행복을 기원하는 지역의 명소들…'소망을 빌었다. 추억은 덤'

입력 2012-10-27 09:49:27

대구의 명소 앞산 전망대 펜스에 젊은 연인들이 변치않는 사랑을 약속하는 글씨를 새긴 자물쇠가 하나 둘 늘어나 눈길을 끌고 있다. 김태형기자
대구의 명소 앞산 전망대 펜스에 젊은 연인들이 변치않는 사랑을 약속하는 글씨를 새긴 자물쇠가 하나 둘 늘어나 눈길을 끌고 있다. 김태형기자

사랑과 소망의 메시지를 한데 모으면 '행복'으로 돌려준다는 장소가 우리 지역에 꽤 있다. 그 확률이 몇 퍼센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로 행복을 선물해주는지도 알 수 없지만, 사랑과 소망의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명소들이다. 명소에 가서 얻는 추억은 '덤'이다.

◆사랑의 우편함

인터넷이 발달하고, 스마트폰이 보급된 시대에 '손 편지'로 사랑의 메시지를 공유하는 장소가 있다. 대구 중구 남산병원 1층 로비에 있는 '사랑의 우편함'이다. 환자들 및 그 가족은 물론 직원들 간에 사연을 적은 엽서를 넣어 공유하는 이 우편함은 올 4월에 설치돼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사연을 공유하는 방법이 독특하다. 일주일에 한 번 우편함을 열어 사연을 모아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병원 자체 방송에서 소개한다. 또 우편함 바로 옆에 있는 나무인 일명 '해피 트리'에 엽서를 매달아 병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엽서, 우편함, 방송, 나무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것.

방송을 통한 사연 소개는 직원들의 자원봉사로 이뤄지고 있다. DJ를 맡고 있는 정재훈(32'물리치료사) 씨와 서주민(29'여'사회복지사) 씨가 그 주인공. 사연을 소개하는 날이면 일찍 점심을 먹고 병원 지하 2층 라디오 부스로 내려와 재치 있는 입담을 뽐낸다.

정 씨는 "학창 시절에 음악 방송을 해 본 경험을 살려 참여하고 있다"며 "방송을 통해 환자와 직원들 간에 서로 고맙다는 내용의 사연을 병원 구석구석 퍼뜨리면 그것이 또 다른 사연을 불러 우편함에 모은다. 방송이 병원 전체에 어떤 훈훈한 기운을 순환시키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서 씨는 "환자들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속마음을 글로 표현한다. 그러면서 직원들은 환자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며 "환자들이 속마음을 정리해 사연으로 적어보며 스스로 치유하는 모습도 보인다"고 말했다.

남산병원은 다른 병원과 달리 3개월 이상 장기 입원, 재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많다. 재활에 대한 소망이 큰 까닭에 고된 치료 과정을 계속 진행하다 보면 환자는 물론 가족들도 쉽게 지치고 낙담할 수 있단다. 약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이러한 정신적'심리적 힘겨움을 보듬는 방법으로 사랑의 우편함과 사연 소개 방송을 연계하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

남산병원 김상근 원장은 "사랑의 우편함과 사연 소개 방송을 통해 환자들과 그 가족 및 직원들이 끈끈한 가족애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실제 치료에도 효과를 보고 있다"며 "병원을 대표하는 '행복 치유 콘텐츠'로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사랑의 자물쇠

자물쇠를 채워 사랑을 표현하는 장소도 있다. 일명 '사랑의 자물쇠' 명소들이다. 사랑의 자물쇠는 국내에서는 2007년 여름쯤부터 서울 남산에 있는 N타워 옆 전망대 펜스 철사에 하나 둘 채워진 것이 시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채우기 시작한 것이 국내 데이트족 사이에 유행하면서 급속도로 퍼졌다. 입소문과 인터넷 블로그의 영향도 컸고, 특히 2008년 MBC 예능프로그램 '일요일일요일밤에'의 인기 코너인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가상 부부로 나온 알렉스와 신애가 남산에 와서 자물쇠를 채우면서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우리 지역에도 사랑의 자물쇠 명소가 생겨나고 있다. 자물쇠를 채울 수 있는 적당한 굵기의 철사나 철망이 길게 이어져 있어 전시 효과도 얻을 수 있는데다 당사자들이 찾아와서 사랑의 약속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장소들이다.

이달 22일 찾은 대구 수성못 수변데크. 멀리서 봤을 때 작은 열매 같은 것들이 펜스 철사에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니 자물쇠였다. 200여 개 정도. 자물쇠를 채운 당사자들의 이름과 날짜, 그리고 애정의 메시지가 예쁜 글씨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일반 자물쇠도 있었지만 '하트' 모양이나 캐릭터가 그려진 사랑의 자물쇠 용도의 제품도 있었다. 실제 대구 시내 팬시 전문점을 찾았더니 같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서울에 남산이 있다면 대구에는 앞산이 있다. 대구 앞산 전망대의 펜스 철사에도 사랑의 자물쇠가 하나 둘 채워지고 있었다.

이전까지 사랑의 자물쇠 명소가 우연하게 만들어졌다면 요즘은 자물쇠를 걸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유행이다. 대구 중구 방천시장의 '김광석 거리'에는 가수 고 김광석의 대표곡인 '이등병의 편지'를 주제로 한 사랑의 자물쇠 펜스가 벽면에 설치돼 있다. 자물쇠는 물론 군번 줄도 걸 수 있는 것이 다른 명소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그래서 연인들의 사랑 약속은 물론 군대를 전역한 청년들의 희망 메시지가 담긴 자물쇠도 발견할 수 있다.

대구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테마공원 '허브힐즈'에도 사랑의 자물쇠 코너가 있다. 1천여 개에 가까운 자물쇠가 모여 있어 현재 대구에서 양도 가장 많지만, 다른 명소와 차별화되는 점은 자물쇠를 채운 뒤 열쇠를 보관할 수 있는 빨간 우편함이다.

자물쇠를 채우고 난 뒤 열쇠의 보관은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이미 자물쇠로 포화 상태가 된 서울 남산에서 먼저 문제가 나타났다. 사랑의 자물쇠가 유행함과 동시에 '자물쇠를 채운 뒤 열쇠를 던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함께 퍼지면서 주변 숲에 버려지는 열쇠가 급증한 것. 그러자 올해 초부터 N타워 측은 열쇠를 되가져오면 경품을 주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또 매주 수요일마다 직원들이 모여 열쇠를 줍고 있다. 채워진 자물쇠도 문제다. 점차 시간이 지나며 녹이 슬면 자칫 환경오염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 그래서 N타워 측은 목재나 친환경 소재로 만든 자물쇠 제품을 권장하고 있다.

◆지역 전통적인 소원 빌기 명소

사랑의 편지 및 자물쇠는 최근 등장한 것들이다. 과거에도 우리 선조들은 소원을 빌었다. 당연히 소원 빌기 명소도 오래전부터 만들어졌다.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소원 빌기 명소는 팔공산 '갓바위'다. 경북 경산시 와촌면에 있는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431호)을 가리킨다. 갓바위는 불교의 다양한 부처들 중 '약사여래'다. 중생의 모든 병을 고쳐주는, 말 그대로 '약사' 부처(여래)를 뜻한다. 그런데 팔공산의 약사여래는 머리에 쓴 갓 덕분에 '갓바위'라는 별칭이 더 유명해졌고, 갓이 대학 학사모와 닮았다며 대입 등 각종 시험 합격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정성으로 빌면 소원 하나는 꼭 이뤄준다'는 캐치프레이즈에 입시철만 되면 대구경북은 물론 부산, 울산, 경남 등 다른 지역에서도 대형버스를 타고 기도를 하러 오는 단체 방문객이 많다.

지역의 이색 소원 빌기 명소로는 '영천돌할매'가 유명하다. 경북 영천시 북안면 '만불사' 인근에 있는 10㎏ 정도의 작은 돌은 수백 년 전부터 마을의 당산신(마을을 지켜주는 주신)으로 여겨져 주민들의 숭배의 대상이 돼 왔다.

이 돌은 소원이 이뤄질지 여부를 그 자리에서 확인해볼 수 있어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방법은 이렇다. 먼저 합장을 한 후 돌을 한 번 들어 올렸다 놓는다. 그런 다음 자신의 이름과 나이, 주소 등을 읊조린 후 소원을 말하고 다시 한 번 들어 본다. 이때 처음보다 돌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면 '곧 소원이 이뤄진다'는 계시이고, 그렇지 않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계시라는 것. 그런데 '소원 성취가 불가능하다'는 계시는 없는 셈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좀 더 기다리며 노력하면 꼭 이룰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가 영천돌할매의 인기 비결이다.

이외에도 경북 문경시 문경읍에 있는 '문경새재 책바위'는 소원을 빌면 장원급제한다는 전설이 있어 학부모들이 많이 찾는다. 옛적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은 책바위 앞을 지날 때 반드시 두 손을 모아 합격을 빌었다고 한다.

경북 울진군 서면에 있는 '사랑바위'는 몸통 하나에 머리가 2개로 남녀가 포옹하고 있는 형상이다. 와서 소원을 빌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한다.

특정 시기가 되면 북적이는 소원 빌기 명소도 있다. 새해 첫날에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비는 명소들이다. 특히 우리 지역은 해가 뜨는 동해안이 가까이에 있어 경북 울진군의 월송정, 망양정이나 영덕군 강구면의 삼사해상공원, 포항시 호미곶의 상징물인 '상생의 손' 앞 바닷가 등이 유명하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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