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오늘날의 예술

입력 2012-10-26 11:02:56

우리는 오래전부터 예술품 특히 미술품은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는 기술의 흔적이라고 여겨 왔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아름답기를 강요하였으며, 아름답지 못한 것은 아예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여인들은 단순한 메이크업을 넘어서서 어떤 미적 기준에 맞춰 몸 자체를 새로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이 아름다움의 찬미는 인간의 신체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분야에까지 확산되었다.

예컨대 우리의 주거 문화나 생활용품, 그리고 자연까지도 어떤 기준에 따른 아름다움을 갖추려 노력하였고, 주저 없이 손을 대서 획일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미학적 평준화와 민주주의에 도취한 사이에 어느덧 우리가 굳게 믿고 추구했던 예술의 본질은 사라지고, 새로운 예술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1975년 미국의 베트남 전쟁 패배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및 소련 체제의 와해를 통해 기나긴 냉전이 종식되며 예술도 변화를 맞이하였다.

순수성, 대립, 배제의 문화는 다름의 허용, 소통과 합의로 열린 문화에 자리를 넘기고, 예술가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사회와 인생의 폭넓은 문제를 고민하며 사회적 문제, 소외된 계급 등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즉 예술이 성적 소수자, 여성, 노동자, 이민자, 종족 갈등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존속해 왔던 추상미술과 미니멀아트, 그리고 개념미술 이후, 미술은 다시 구상과 사회 속으로 회귀한다.

이러한 '허용적 문화'로의 이동은 예술 장르들 사이의 대립도 누그러뜨리고 무산시켰다. '위대한 예술'과 대중 미술, 키치나 팝, 회화와 문학, 음악 등이 서로 섞일 수 있게 되었고, 회화와 사진 사이의 대립, 조각이나 설치의 구분도 무의미해졌으며, 심지어 사진과 건축의 경계마저도 흐려지게 되는 것이다.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 조각 부문 대상 수상작은 다름 아니라 독일의 베른트와 힐라 베혀 부부의 산업 현장 구조물을 찍은 사진 작품이었다. 이로써 모든 예술 장르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며 특히 평면과 입체와의 차이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이제 예술은 예술가가 보았던 것 또는 느끼거나 경험했던 것만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예술 작품 속에는 상상적인 구조들이 포함되고, 예술가와 동시대인들이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는 감각과 사고의 틀을 반영한다. 예술적 기호들과 재료들의 총체는 우리 정신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의미적 시스템을 이루며, 예술은 더욱 친근한 일상으로 돌아와 사회와 소통하며, 그 형태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은 자유로워졌고, 덕분에 우리는 다양하고도 인간적인 예술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예술 작품이 존재론적 진정성을 추구했다면, 오늘날의 예술은 시대의 사회적 진정성을 추구하며, 과거의 예술가처럼 사회로부터 이탈되어 스스로의 진실을 찾아 방황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진정성의 추구가 작위적이고, 예술을 숨 막히게 함을 인정하며 타인과 소통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우리의 안식처로서 그 역할을 기꺼이 떠맡으려 시도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작금의 예술 작품의 특성을 분석해 본다면, 그 완전성이 아니라, 구성적인 파열, 풀림, 단절과 함께 대립 또는 모순을 품는다. 그리고 관람객 역시 미완의 작품을 완성시켜야 하는 창조자로서 초대되고, 작품은 관람객이 새로운 의미를 찾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도구가 된다.

작품의 의미 역시 각각의 관객에 따라 그 이해의 폭이 가변적인 것으로, 작품은 언제나 새로운 되어짐 속에 들어 있고, 롤랑 바르트가 '신화론' 속에서 분석한 '고착된 신화적 의미들'을 부정하도록 한다. 이제 예술은 완전히 해체된 것이다.

이수균/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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