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익의 가슴 뛰는 세상] 스스로 선택하기

입력 2012-10-20 07:43:38

"성익아, 어떻게 하면 자신이 원하는 걸 찾을 수 있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바로 되물었습니다. "너는 하루에 몇 시간 수능 공부해?" 기본 9~12시간씩들 부르더군요. "그럼 너의 꿈에 대해서는 하루에 몇 시간 투자하니?"라고 물으니 다들 답이 없었습니다. 좀 모른다 싶으면 영어 사전과 수학 정석책은 그렇게 열심히 보는 친구들이 정작 자신의 꿈에 대해 투자하는 시간은 전혀 없다고 말했던 것이지요. 걱정과 고민은 많이 하지만 실질적인 투자는 없었던 것입니다. 직업도 성적도 꿈도 저는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투자받아야 하고 노력해야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요.

대학에 들어와서 학과 이외에 다른 활동들을 했습니다. 작은 행사이지만 팀을 꾸리고 기획을 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있었지요. 후배들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고 각자 맡아야 할 업무를 분담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주체성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늘 들었던 이야기가 바로 "선배 그냥 시켜주세요"라는 이야기였지요. 저로서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시켜달라는 말을 어떻게 저렇게 쉽게 할 수 있지?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사회 구조상, 분위기상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기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전체 직업의 수는 수천 가지가 되는데 그중 학생과 학부모가 지향하는 직업은 대략 20여 가지라는 점, 대학 입학금 등록금을 학생이 감당하기에는 힘드니 자연스레 본인 의사보다는 부모님, 교사의 의견들이 힘 있게 다가가는 점, 하루 종일 학교에서만 있으니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10대를 학교 울타리에서 보낸다는 점 등 여러 모순이 있긴 하지요. 대한민국은 평균적으로 너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성적 다음으로 꿈을 꾸는 것을 강요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먹어 본 과일은 사과 하나인데 다른 과일 맛을 상상해보라는 상황이랄까요?

잠시 제 이야기를 하자면 고등학교 다닐 적 입시지원서를 낼 때였습니다. 그때 제가 1순위로 지원했던 곳은 농대였지요. 급작스러운 결정이라 주변에서는 난리였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 하셨고 같은 학급 친구들은 "야, 넌 대학에 밭 갈러 가냐?" 하면서 한참을 놀림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제 고집대로 입학은 하게 되었고 4년 동안 찐한 대학생활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큰소리 떵떵 치고 간 학교라 좋든 싫든 어떤 상황이라도 스스로 풀어나가야 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또 하나 이야기해야 할 사실은 제 꿈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농대 이전의 꿈은 화가, 다음은 과학자, 성직자, 대안학교 교사 그리고 현재는 농대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회적 기업가에 이르기까지 말이지요. 주변에서 다시 수군대기를 "너는 늘 공부하고 준비했던 것들을 말짱 헛일로 만들어 버리냐?"며 깨알 같은 안티를 걸어줍니다. 역시나 가장 피해 의식을 느끼시는 분은 저희 부모님입니다. 요즘도 종종 술자리를 가지면 어머니께서는 웃으시면서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인데 넌 누구냐?"라고 쏘아붙이기도 하십니다.

한국 가야금 계열의 대표 명사로 황병기 교수님이 계십니다. 6'25전쟁 피란길에 만났던 가야금과의 인연으로 그 길을 걷게 되었지만 남자라는 이유 그리고 집안과의 갈등을 겪었고 결국 서울 법대라는 과정을 거치고 다시 가야금의 길을 걸으셨던 삶의 이야기를 가진 분입니다. 다시 복귀하는 과정에서 주위에서는 "예술인에게 4년이라는 시간을 연주하지 못한 것은 치명적인 결점이 아닌가?"라고 이야기했지만 자서전에서 '오히려 그 당시 배웠던 법학 지식과 체계성들이 지금의 예술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고 회상하더군요.

자신이 원하는 것이 하루가 가든, 일 년이 가든, 수십 년이 가든 그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식이나 구체적 형태로 축적되기보다 새로운 것을 선택하고 주체적으로 이끌 수 있는 경험치로 남는 것은 아닐까요? 현재 제가 성공한 모델은 아니지만 하나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는 삶이 즐겁다'고 말이지요.

네트워크기획 '아울러' 링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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