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通] 날뫼북춤 예능보유자 윤종곤 씨

입력 2012-10-20 07:45:22

"쿵쾅" 북소리 매력, 공연 요청 많아도 정작 젊은층 관심은 줄어 전

윤종곤 예능보유자가 날뫼북춤을 멋들어지게 선보이고 있다. 사진
윤종곤 예능보유자가 날뫼북춤을 멋들어지게 선보이고 있다.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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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쿵쿵 덩더쿵, 쿵쿵 덩더쿵'.

신명나는 굿거리 장단에 감색 쾌자(옛 군복의 종류)가 펄럭인다. 어깨가 들썩이더니 어느새 북과 몸이 한 덩어리가 되어 빙글빙글 돌아간다. 이어 자진모리, 휘모리 장단으로 넘어가면서 숨이 가빠지고 손놀림도 현란해진다. 궁싯궁싯 저절로 엉덩이와 어깨가 들썩거린다.

예능보유자가 선보인 대구시 무형문화재 2호인 날뫼북춤의 한 장면이다. 날뫼는 날아온 산(비산'飛山)이란 뜻으로 이 춤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대구 비산동 원고개를 중심으로 전승되어온 민속춤이다. 비산농악이 원류로 북만으로 추는 북춤으로 발전한 특이한 춤이다. 힘에다 흥이 어우러져 멋이 남다른 '메이드 인 대구' 북춤이다.

17일 오후 대구 서구 문화회관 지하1층 날뫼북춤 보존회 연구실에서 날뫼북춤의 맥을 잇고 있는 윤종곤(51) 예능보유자를 만났다.

◆타고난 신명

요즘말로하면 '모태 신명꾼'. 아버지와 삼촌이 북과 장구를 잘 쳐서 고향인 달성 하빈 인근에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 피를 물려 받았다. 북을 잡으면 어깨가 절로 들썩이게 될 정도로 신명을 타고 났다. "어릴 적부터 농악이 좋았습니다. 어릴 적 고향 동네에서는 잔치가 벌어지면 어김없이 풍물놀이가 펼쳐졌어요. 그 때마다 풍물패를 따라다니느라 끼니를 거를 때도 있었지요."

그 매력에 이끌려 풍물하는 사람에 비해 비교적 일찍 북을 잡았다. 대구농림고를 졸업한 그는 군 제대 후 직장을 다니면서 농악에 빠져들었다. 신명나는 일이었다. 액자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면서 가끔 북 치고 꽹과리 치기를 계속했다. 오전에 버스를 몰면 오후 내내, 오후에 버스를 몰면 오전 내내 그는 연습장에 나와 북채를 잡았다. 처음부터 북을 쳤다. 물론 틈틈이 꽹과리, 장구, 징을 배우기도 했다.

24세 때 날뫼북춤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됐다. "하루는 허리가 안 좋아 며칠 버스기사 일을 쉴 때였습니다. 지금의 삼덕초교 옆을 지나고 있는 데 둥둥 하는 북소리가 들렸어요. 순간 피가 끓기 시작했지요." 윤 씨는 본능에 이끌려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어린아이들이 풍물을 배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한참 넋을 잃고 지켜보다 운명적인 결심을 하게 됐다.

"풍물을 가르치는 강사에게 무조건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지요. 당시 초등학교에서 농악을 배우는 시간이었고 강사로 나왔던 김수배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평생 스승이자 제1대 예능보유자인 고 김수배 선생과의 만남이었다. 이미 준비된 만남이기도 했다. "알고보니 아버님과 스승님이 서로 아는 사이었고 삼촌과도 이웃사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스승님도 제 열정에 탄복했는지 며칠 되지 않아 일을 그만두고 날뫼북춤을 배우라고 했지요." 날뵈북춤 보존회 입단을 권유받은 윤 씨는 며칠밤을 고민했다. 지금으로 치면 "'특례입학'을 권유받은 셈이었지만 무려 8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당장 호구지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북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북을 치면 심장이 고동치는 듯한 벅찬 신명이 절로 납니다. 북을 치면 묘하게 북과 몸이 하나되는 느낌이지요. 듣는 이들도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빨려드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지요." 윤 씨의 북 예찬론이다.

◆메이드 인 대구

윤 씨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학교 강의도 해야 하고 공연도 하고 예능보유자로서 후계자를 양성하는 등 1인 3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날뫼북춤이 전국에서 유일한 북춤이라는 특성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행사가 많아지고 있고 초청공연도 해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각 학교의 전통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한다. 일반인들의 큰 행사, 곧 시'군의 큰 행사와 총동창회 등의 행사는 물론 각종 이벤트 회사의 초청 공연도 끊이지 않는다. 행사가 많을 때는 하루 몇 차례를 뛰기도 한다.

날뫼북춤의 인기비결은 뭘까. "북소리는 쿵쾅 거리는 심장소리와 같아요. 우직하게 울리면서도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북이기에 경상도 기질과 딱 맞아 떨어지는 악기입니다." 장구가 가락이 많아서 섬세한 반면 북은 단순하면서도 장중한 멋이 있어 무뚝뚝하지만 스케일이 큰 경상도 기질과 닮았단다. 무뚝뚝하고 투박하지만 여운이 남는, 그래서 가슴을 울리는 멋이 날뫼북춤만의 매력이라는 설명이다. "경상도 농악에서는 북의 비중이 유난히 큽니다. 타 지역의 풍물에서는 북이 1, 2개 정도 편성됩니다. 전라도 지역에는 장구가 많고 북이 적지만 경상도는 다릅니다."

그래서인지 경상도 특유의 가락에 맞춰 추는 그의 북춤은 남성적 힘이 넘치는 장중한 맛으로 보는 이들의 흥을 돋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순히 북치고 춤추는 게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스토리텔링이 있다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이다.

"날뫼북춤은 대구의 비산동 일대에서 전승되어 오는 북춤입니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산 모양의 구름이 날아오다 어느 여인의 비명소리에 놀라 땅에 떨어져서 동산이 되었다는 전설에 의해 '날아온 산'즉 날뫼(飛山)라는 명칭이 생겼습니다. 여기다 옛날 지방관리가 순직했을 때 백성들이 이를 추모하기 위해 봄'가을에 북을 치며 춤을 춰 제사를 지내면서 생긴 구전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지요." 이야기가 있는 만큼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다는 설명이다. 연출 과정 역시 덩덕궁이, 자반득이(반직굿), 엎어빼기, 다드래기, 허허굿, 모듬굿, 살풀이굿, 덧배기춤 등으로 구성지다.

◆아~옛날이여

"옛날이 좋았습니다. 7, 8년 전만 해도 대구 인근에는 비산농악뿐 아니라 고산농악과 차산농악 등을 비롯한 농악팀이 동네마다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 사라졌지요."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인기는 '반짝인기'에 불과해 언제든지 모래성처럼 사라질 수 있어서다.

"1980년대 이후 대구지역에 많았던 대학의 풍물 동아리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취업공부하느라 풍물동아리가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한 때 단과대학별로 심지어 학과별로 한 개 정도 있던 동아리가 최근에는 한 대학에 두어 개 정도가 잔존할 정도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농악을 배우려는 일반인들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요."

2년 전 스승의 뒤를 이어 예능보유자로 선정되면서 남다른 책임감도 어깨를 짓누른다. 스승이 물려준 신명의 기예를 고스란히 떠안으면서 이를 후세에 물려줄 일이 쉽지 않음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특히 2006년 제1대 예능보유자 김수배 선생이 타계한 후 2대 예능보유자를 선정하기 위해 3년 간의 진통 끝에 대를 잇게 돼 부담감이 더 크다.

"예능보유자로 선정될 당시 기쁘기보다 어깨가 무거웠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지역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날뫼북춤이었기에 시민들의 걱정과 실망이 컸던 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지요."

그는 날뫼북춤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선 단원들의 화합에 나서고 있다. 3년 동안 예능보유자가 없었으니 정기적인 연습도 힘들었고 단원들 간의 갈등도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신입 단원 수도 줄고 회원 수도 줄었다. 특히 날뫼북춤이 후세대로 이어지기 위해 20, 30대 젊은 층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청소년 풍물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전수자를 찾아 밥 사줘가면서 북 등 장비를 마련해 날뫼북춤의 저변확대에 나서고 있다. 또 보다 많은 대중들의 참여와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작은 뮤지컬 형식의 날뫼북춤을 다음 달 선보일 계획이다. 현재 서울, 부산, 포항 등에 지부를 두고 있지만 이를 확대해 해외지부까지 결성될 수 있도록 발벗고 나서고 있다. 또 대구시 무형문화재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신청해 날뫼북춤의 위상을 높일 계획이다.

"옛날이 좋았지만 지금도 그럭저럭 놀만합니다. 날뫼북춤이 가진 매력을 알고 이를 찾는 이들도 꾸준히 있는데다 곳곳에서 판이 열리고 있지요." '인생은 신명나게 춤추는 한 판'이라는 그의 열정은 식지 않고 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윤종곤은=1962년 대구 달성군 하빈에서 태어나 대구농림고교를 졸업했다. 1987년 비산농악, 날뫼북춤 보존회에 입단한 후 1992년 날뫼북춤 전수장학생, 1997년 이수자를 거쳐 현 날뫼북춤 예능보유자로 날뫼북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1990년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농악부 참방상 수상을 비롯해 국립국악원 초청 등 많은 초청공연에 참가했고 국악강사풀제 강사로 지정돼 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2007년 세계 인명인전 북춤 독무, 이듬해 대구시 무형문화재 연합회 사무국장을 거쳐 2010년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2호 날뫼북춤 예능보유자로 확정됐다. 지금까지 일반풍물단체, 각급 학교 학생, 일반인 등 5천여 명에게 날뫼북춤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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