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영국군이 프랑스의 북부 항구도시 칼레 시를 점령했다. 그러자 영국군에 맞서 항전하던 칼레 시민들은 모두 학살당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생사의 기로에 선 칼레의 시민들은 사절단을 보내 자비를 호소했고 영국 왕은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책임자 6명의 처형을 요구했다. 그때 가장 먼저 처형장으로 앞장선 인물이 칼레 시에서 최고 부자였던 사람이었다. 그 뒤를 시장과 법률가 등 귀족들이 따르며 시민 대표로 희생을 자처했다.
로댕이 제작한 유명한 청동 조각상 '칼레의 시민'은 바로 이들 영웅적 시민 6명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기념상의 주인공들은 늠름한 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헌신과 죽음 사이에 저마다 번민하는 모습이 너무도 인간적이다.
로댕의 이 사실주의 작품은 당대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후일 명작으로 거듭났다. 아무튼 이 '칼레의 시민'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전형이 되었고, 사회 지도층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숭고한 교훈을 남겼다.
그런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고위 공직자 등 귀족들은 자녀들의 국적을 포기하는 희생(?)을 감내하면서 병역의무를 면제받은 것으로 드러나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어떤 이는 일시적으로 해외 영주권을 받아 병역면제를 받은 뒤 다시 국적을 회복해 공직 생활을 하는 위험한 곡예까지 감수했다. 국적상실로 병역면제 처분을 받은 귀족 후손들이 연간 수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국적을 포기하는 귀족들의 희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외국인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상당수 학부모는 중남미 국가에 2, 3일간 단기 체류하면서 브로커를 통해 시민권증서를 위조하고 국적상실 신고를 하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재계 유력층 가문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일제가 조선을 침탈했을 때 이 나라 귀족이나 지배층들의 행보는 두 부류였다. 하나는 자신의 노블레스(고귀한 신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권력에 빌붙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블리주(도덕적 의무)에 대한 결의를 다지고 일제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었다. 로댕이 '서울의 귀족'을 조각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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