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중'일 간의 영토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영토 분쟁은 당사국 간의 문제로서, 유엔 총회와 같은 다자 외교의 장에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은 유엔 총회에서 영토 문제를 본격 거론했다. 궁지에 몰린 독도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의 국면 전환을 위해서다. 지난달 26일 유엔 총회에서 노다 총리는 센카쿠에 대한 중국의 압박을 불법적인 '무력행사나 위협'으로 비난하고, 독도에 대해서는 국제사법재판소(ICJ) 공동 제소를 요구했다. 다음 날 중국의 양제츠 외교부장은 "일본이 댜오위다오를 훔쳤다"면서 일본을 땅 도둑으로 몰아붙였다. 그 하루 뒤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은 일본이 영토 문제와 역사 인식을 왜곡할 목적으로 법치주의를 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위안부 문제를 '인간의 존엄성과 고결함'을 해친 범죄로 규정하고 사죄를 요구했다.
한국 및 중국과 일본의 영토 문제에 대한 인식 차이는 크다. 일본은 단순한 법적 문제로, 한국과 중국은 식민지 침략의 역사 문제로 인식한다. 일본은 "1885년 이후 몇 차례에 걸쳐 현지 조사를 해보니 무인도인 센카쿠에 중국의 지배가 미친 흔적이 없다"며 1895년 1월 센카쿠를 자국의 영토로 만들었다. 1905년 2월 일본은 "타국이 이를 점령했다고 인정할 만한 형적(形跡)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독도를 편입시켰다. 10년 간격으로 무주지(無主地)인 센카쿠와 독도를 합법적으로 자국 영토로 했다는 논리다.
그런데 시점이 묘하다. 1895년과 1905년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일본의 승리가 확정된 시점이다. 청일전쟁에 패한 중국은 대만과 요동반도를 일본에 떼 주고, 열강들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한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한다. 식민지와 반식민지의 서막이 독도와 센카쿠에서 시작된 것이다. 나라 전체를 빼앗길 상황에서 이 섬을 지키기 위해 일본에 대항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지킨다 해도 식민지와 반식민지가 되면 그 섬은 결국 일본 땅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이 센카쿠 편입을 위기를 틈탄 '도둑질'로, 한국이 독도 편입을 식민지 '역사 정의의 왜곡'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이다. 합법을 가장한 불법이라는 뜻이다.
국가 간의 관계를 법적 잣대로 인식하는 태도는 근대 일본 외교의 특징이다. 한일병합은 조약에 의해 합법적으로 성립했고, 만주국은 만주인들의 자발적 행동으로 정당하게 세워졌으며, 한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은 법적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자고 하며, 중국의 압박을 불법적 '위협'이라고 주장한다. 일견 그럴듯하다. 그러나 독도는 재판의 대상이 아니라 식민지 침략에 대한 반성의 대상이고, 센카쿠에 대한 중국의 압박은 힘없을 때 도둑맞은 장물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2차 대전 후 독일은 10만㎢(남한 크기)의 영토를 폴란드에 넘겨주고 그곳에 사는 800만 명의 독일인을 이주시킨 사실도 있다.
도쿄재판으로 일본은 침략 전쟁에 대해 단죄를 받은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재판은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행한 전쟁범죄와 평화에 대한 죄만을 다루었다. 그 이전의 침략 행위, 위안부 문제와 같은 새로 밝혀진 인도적 범죄, 천황의 전쟁 책임 등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중'일의 역사 인식을 둘러싼 논쟁은 대부분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일본이 반성하고 단죄받아야 할 부분이 아직 많다는 의미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센카쿠 '도둑론', 한국의 독도 '식민지 침략론' 같은 영토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본다면, 논리의 비약은 차치하고, 독도 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가 아니라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일본의 역사적 침략 범죄로 다뤄져야 한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이며, 천황의 침략 범죄도 예외가 아니다. 유엔 총회에서 행한 노다 총리의 '법의 지배'와 한'일 간의 영토 분쟁에 대해 서방 언론이 일본에 비판적 시각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은 갈수록 왜소해지고 있다. 일본은 세계가 알고 자신들만 모르고 있는 역사적인 정의를 직시해야 한다.
이성환/계명대교수·국경연구소 소장)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