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 먹는 걸로 보이나요? 이거 밥입니다, 컵밥

입력 2012-10-06 07:58:08

모양도 맛도 새롭게… 밥은 진화중

대구 수성구에 있는 컵밥 전문점
대구 수성구에 있는 컵밥 전문점 '야미고프'에서 손님들이 다양한 컵밥 요리를 맛보고 있다. 성일권기자
다양한 용기에 밥은 물론 샐러드나 면류 등을 담은
다양한 용기에 밥은 물론 샐러드나 면류 등을 담은 '컵밥'.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비상식량에서 각양각색 별미로 바뀐
비상식량에서 각양각색 별미로 바뀐 '주먹밥'.

원래 밥은 패션과 거리가 멀었다. 다양한 식재료로 형형색색 멋을 뽐내는 반찬'국'찌개와 달리 맨(하얀)얼굴로 밥상에 올랐다. 사정이 빈궁할 땐 보리로 볼품없는 누런 옷을 해 입었다. 일 년에 딱 한 번 멋을 부린다는 게 정월 대보름에 붉은 팥과 찰수수 액세서리를 하는 정도였다.

그러던 밥이 요즘 패션 리더로 떠오르고 있다. 밥상 위는 물론 사람들의 손에 들려져 길거리를 활보한다. 다양한 스타일의 삼각김밥, 최근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인기 스타로 등극한 오니기리, 다양한 용기에 담겨지는 컵밥 등 '각양각밥' 밥 스타일이 현대인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휴대용 밥에서 별미로, 주먹밥과 충무김밥

태초에, 아니 한국전쟁 때 '주먹밥'이 있었다. 주먹밥은 손으로 주물러 먹기 쉽게 뭉쳐 놓은 밥이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에 별다른 양념 없이 소금만 발라 간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쌀이 귀했던 터라 보리주먹밥이 대부분이었다. 휴대가 쉬웠던 주먹밥은 한국전쟁 때 병사들은 물론 피란민들의 중요한 비상식량이었다. 한국전쟁 영화를 보면 병사들이 꽁꽁 언 밥 덩어리를 통째로 먹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바로 주먹밥이다. 당시 얼마나 식량이 귀했는가 하면 군대 지원자들 중 주먹밥을 준다고 해 지원했다는 증언도 전해질 정도다.

그랬던 것이 요즘은 주먹밥에 고기와 야채 등 각종 재료를 넣어 별미로 해 먹는다. 매년 6월 25일이 돼야 학교나 길거리에서 소금만 바른 보리주먹밥을 먹는 기념행사를 연다.

주먹밥의 특징은 '빨리빨리'와 '간단하게'다. 전쟁 이후에도 사람들은 밥 먹는 시간을 줄여 일하기 위해 주먹밥을 닮은 음식을 해 먹었다. 대표적인 것이 '충무김밥'이다.

충무김밥은 지금의 경상남도 통영이 충무로 불릴 때 만들어진 음식이다. 보통의 김밥과 달리 속재료를 넣지 않고, 참기름을 바르지 않은 김으로 손가락 마디 굵기로 싼 김밥에 깍두기와 오징어무침을 곁들인 것이다.

충무김밥의 유래 중 하나는 고기잡이를 하는 남편이 일하느라 바빠 식사를 거르고, 술로 끼니를 대신하는 모습을 본 한 부인이 개발했다는 것이다. 남해안의 덥고 습한 기후 특성상 보통 김밥은 잘 쉬기 마련인데 밥과 속을 따로 담았더니 유통기한이 길어졌다. 그러면서 크기도 작아 집어 먹기 쉬워 뱃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 이후 충무김밥은 1980년대 초 우연히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것을 계기로 전국구 별미가 됐다.

◆휴대용 밥의 대명사, 삼각김밥

주먹밥과 충무김밥을 닮은 휴대용 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요즘 현대인들도 바쁜 일상 속에서 끼니를 거르기 일쑤인 것 등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여서다.

가장 대중적인 휴대용 밥은 '삼각김밥'이다. 편의점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삼각김밥은 1980년대에 일본에서 개발됐다. 국내에는 1991년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최초로 삼각김밥을 판매했다. 이후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 끼를 단돈 몇 백원에 해결할 수 있다는 매력으로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 및 직장인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면서 다양한 맛도 충족하고 있다. 각 편의점 브랜드에서 판매하고 있는 삼각김밥 종류는 20여 가지가 넘는다. CU(구 패밀리마트)'세븐일레븐'GS25가 지난해 발표한 삼각김밥 판매 순위는 1위가 전주비빔밥 제품, 2위는 참치마요네즈 제품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삼각김밥 시장 규모는 2천200억원대였다. 매년 성장세다.

◆프랜차이즈 붐, 오니기리와 컵밥

휴대용 밥은 다양한 풍미도 더하고 있다. 그러면서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본식 주먹밥인 '오니기리'가 대표적인 상품이다.

그런데 오니기리는 삼각김밥의 아버지뻘이다. 오니기리를 본떠 일본에서 만든 삼각김밥이 국내로 전래된 것. 우리나라의 주먹밥처럼 일본에서도 오니기리는 전국시대 때 무사들이, 또 2차대전 때 병사들이 비상식량으로 들고 다녔다. 주먹밥이 별미가 된 것처럼 오니기리도 현재 국내에서는 고급 수제 삼각김밥으로 인식되고 있다.

'컵밥'도 있다. 그 유래는 서울 노량진 학원가의 노점상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빠르게 식사를 해결하려는 고시생들을 상대로 판매한 것이다. 컵라면 크기 정도의 용기에 덮밥이나 볶음밥을 담아 2천원 안팎으로 팔았다. 어떤 밥이든 담을 수 있어 메뉴가 수십 가지나 된다. 고시생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준다며 화끈한 매운맛을 낸 '폭탄밥'도 있을 정도다.

이에 식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이동하면서 먹을거리를 찾는 직장인 등 '노마드 런치족'을 상대로 컵밥을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가게도 나타나고 있다. 밥은 물론 샐러드나 면류 등 다양한 먹을거리를 담아 커피처럼 '테이크아웃'하는 트렌드를 퍼뜨리고 있다.

결국 휴대용 밥으로 시작한 각양각밥들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테이블 앞에 앉아 여유 있게 즐기는 별미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니기리와 컵밥 외에도 전통적인 이색 밥인 '초밥'이나 '캘리포니아 롤'(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서구인의 입맛에 맞게 개량한 초밥)과 같은 각종 '컬러풀' 밥이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즉석밥 스타일도 대세

아무리 바쁘다지만 현대인의 '귀차니즘'은 극에 달하고 있다. 집에서도 밥 해먹기가 귀찮단다. 하지만 식품 업체들은 결코 이를 나무라지 않는다. 오히려 수익을 낼 기회로 본다. '즉석밥' 시장의 시작이 그랬다. 주인공은 CJ제일제당의 '햇반'이다.

1996년 CJ제일제당이 전자레인지에 돌리거나 뜨거운 물에 넣고 끓여 먹을 수 있는 반조리식 밥인 햇반을 처음 내놓았을 때 반응은 싸늘했다. "집에서 밥솥만 열면 있는 밥을 누가 돈 주고 사서 먹겠냐"는 등 시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와 싱글족 등 밥마저 간편한 즉석식품으로 먹으려는 수요가 점점 늘었고, 햇반은 지금도 히트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즉석밥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천500억원대까지 성장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즉석밥으로 '전투식량'도 있다. 민간용으로 개량돼 인터넷 쇼핑몰 등 틈새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메뉴를 다양화하고 맛도 업그레이드한 것. 그러면서 특유의 '군사기술'도 체험할 수 있어 인기란다. 한 제품은 연결된 줄만 잡아당기면 발열체가 온도를 순식간에 80℃까지 높여 자체 조리를 한다. 업계에서는 주5일제 확산으로 등산'낚시'캠핑 등 레저 활동을 즐기는 남성들이 늘면서 전투식량 수요도 덩달아 높아졌다고 분석한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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