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기가 막힌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노트북 컴퓨터 키보드가 모조리 다 뽑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꼬맹이들의 소행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멘붕'상태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밀린 원고를 안고 퇴근했는데 그것마저도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이미 세상 모르고 잠들어있는 '범인'들을 깨울 수도 없어 애써 화를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잠시 정신 차릴 여유는 있었나봅니다. 기록을 남겨야겠다 싶어서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카카오 스토리(사진공유 SNS)에 사진을 업로드 했습니다. 조금 뒤 여러 사람들의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제일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얼마나 큰 인물이 되려고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아이에게 키보드를 하나 선물해주라는 이야기 등등 다양한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모두 그 때의 제 기분에 '공감'해주는 글들이었습니다. 댓글을 읽다보니 웃음도 나고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노트북을 집어던지고만 싶었던 분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차분히 앉아서 키보드를 하나씩 끼울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자판을 하나하나 끼워 맞추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얼마 전 저녁모임에서 나눈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그날 대화에서 한 분이 앞서 제가 사용한 '멘붕'이라는 단어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멘붕'(멘털 붕괴)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의 '정신이 붕괴' 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상상하기조차 힘든 상황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아찔한 단어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어 그 분은 '멘붕' 말고 '멘공'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키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멘공' 즉 '멘털 공감'이라는 말이 얼마나 멋지냐는 것이었습니다. 말을 만들어 쓰다보면 유행이 될 것이고 사람들의 사고도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 그 분의 논리였습니다. 정말이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공감'은 사람 사이에 안정과 유대감을 심어주는 키워드입니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학교 폭력, 청소년 자살 그리고 아동 대상 범죄 등등의 원인도 바로 이런 '공감' 능력을 키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야할까요? 감성의 영역이 어디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겠습니까. 어린 시절부터 형제끼리, 친구끼리 어울리면서 여러 감정과 감성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정말이지 '공감' 능력을 길러줄 여유가 없습니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아이들은 긴장 상태에서 생활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하루 1시간도 놀 시간이 없습니다. 각종 학습을 위한 학원에 예체능(심지어는 줄넘기 학원까지) 과외 다니느라 밤늦은 시간에 귀가합니다.
집에 와서도 학습지 선생님들이 기다리는데 아이들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찾아 배울 시간이 없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워낙 험악한 사고 뉴스를 많이 접하다 보니 아이들에게도 낯선 사람뿐만 아니라 '아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양보나 배려를 가르치기에 앞서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는 방법을 먼저 가르칩니다. 실제로 요즘 아이들은 정말 똑똑합니다. '독서교육' 붐에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고 엄마들이 조를 맞춰서 다양한 현장체험 학습도 빠짐없이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걸 다해내야 하니 아이 스스로 감성을 기를 여유가 없습니다. 스트레스나 분노와 같은 감정을 풀 곳도 없습니다. 아이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가는 것이 옳은지 찾기 힘들고 막막하니 그저 '남들처럼'이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들 합니다.
저 또한 그리 특별한 엄마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학년 때는 놀게 해야겠다는 입학 초의 결심과는 달리 어느 덧 아이가 수강하는 학원 수가 하나 둘 늘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에게서 '엄마, 하루가 왜 이렇게 짧아'하는 한숨 섞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뛰어 놀아도 해가 길게 느껴졌던 제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정말 안쓰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를 길러보니 이 세상의 모든 문제와 그 해답은 육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보다 자유롭게 세상과 소통하고 타인과 공감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어디 없을까요? 함께 고민해보기를 제안합니다.
임언미/대구문화 편집장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