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을유문화사 펴냄/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돌이켜보면 고전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책 많이 읽고 글도 잘 써야 한다는 기자라는 직업이 부끄러울 정도다. 고교와 대학시절 아버지는 놀기만 하는 아들에게 항상 했던 말이 있다. "단테의 신곡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같은 고전을 차분하게 한 번 읽어봐라!"
'소귀에 경 읽기'였다. 친구들과 당구도 쳐야 하고, 미팅'소개팅에 눈이 뻘게서 마음을 쏟고 있던 시절에 고전이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냐? 하지만 아버지의 말의 귓가에 맴돌아 한 번씩 도서관에 가서 단테의 신곡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란 책을 손에 들어보긴 했다. 첫 표지를 시작으로 몇 페이지를 읽어보다 덮은 기억이 생생하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 아버지의 말은 새삼스럽다. 왜 이런 책들을 읽어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갈 것 같다. 인생의 깊이가 제대로 담겨 있는 불후의 명작들은 시대가 흐른 지금에도 큰 울림이 있는데, 당시에 제대로 한 번 읽어보았다면 젊은 날의 초상에 깊은 사색이 더해지지 않았을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다시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시점이라는 말도 있어 20년의 세월에 흐른 지금, 다시 고전 중에 명작인 죄와 벌에 다시 한 번 도전했다. 마침 '느리게 읽기'라는 코너에 소개하기에 적격이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심판하고 그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책을 통해 모든 절대 가치에 대한 이반으로부터 그것에로의 귀의, 존재의 분열로부터 통일성, 인간 존재에 대한 경멸로부터 존재 일반의 가치에 대한 인정과 사랑으로 건너가는 인간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뛰어난 사람은 평범한 여러 사람을 위해서라면 기존의 법률과 도덕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고 사악한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죽이지만, 양심의 가책과 내부 분열로 고민하다가 창녀 소냐의 사랑에 감명을 받아 자수하여 도덕적인 갱생의 길을 구하게 된다. 이성과 감성의 분열로 고뇌하는 전형적 인물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단순한 형법 질서의 유지가 아니라 신적인 도덕률의 회복이다. 삶의 공동체 속에서 재통합 가능성을 국가적, 공적인 조치에서 심리적, 내면적 차원으로 옮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 영혼의 모든 깊이를 묘사함으로써 보다 높은 의미의 리얼리즘에 이르고 있다.
소설 공간의 프롤레타리아가 몰려 사는 페테르부르크의 더러운 골목, 좁은 다락방, 초라한 셋방, 싸구려 여관방 등 현실의 초라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리얼리즘 그 자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생존의 권리를 박탈당한 가난한 사람들, 인간으로서 마지막 품위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창녀들이다.
이 고전은 도스토옙스키의 개인사를 알고 보면 더 이해가 쉽다. 금지된 서적을 읽고 난 후 자유주의적인 발언을 한 혐의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처형 직전 황제의 특사로 풀려나 시베리아 유형으로 감면받고 옴스크 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역작 죄와 벌에 대한 구상이 이뤄졌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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