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골·죽막·당마루…고갯마루 따라 7개 자연부락
경북 김천시 봉산면과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의 도(道) 경계를 이룬 곳이 추풍령(秋風嶺)이다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 가는' 추풍령은 높이가 해발 221m이다. 노랫말로 보면 태산준령일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게 높은 고개는 아니다.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고갯길로는 가장 낮은 곳이다. 예부터 문경 조령(鳥嶺), 영주 죽령(竹嶺)과 함께 소백산맥을 넘는 대표적인 교통로였다. 추풍령은 경부선 철도가 개설되고 국도 4호선, 1970년에 경부고속도로, 이어 추풍령 휴게소가 생기면서 가장 널리 알려진 동시에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고개가 됐다.
추풍령은 교통의 요지인 탓에 군사적 요충지로서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진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추풍령을 갖기 위해 싸움을 벌였다. 임진왜란 때 왜병이 한양으로 올라가기 위해 추풍령을 공격하자 이곳에 주둔한 관군이 황소꼬리에 불을 붙여 적진으로 뛰어들게 해 혼비백산한 왜군을 섬멸했다는 추풍령전투의 현장인 것이다.
그러나 추풍령은 선비들의 과거 길로는 환영받지 못했다. 길 이름에서 '추풍낙엽'(秋風落葉)을 연상한다고 해 선비들이 과거 길로 이용하는 것을 꺼렸다. 이 때문에 추풍령과 이웃한 괘방령(掛榜嶺)이 과거 길로 각광을 받았다. 괘방령의 괘(掛)자가 '걸다'의 의미로 합격자 방문(榜文)에 자신의 이름이 걸릴 것을 기대하는 속설 때문이었다.
◆정다운 이웃사촌이 정답게 모여 사는 추풍령
추풍령의 또 다른 이름은 백령(白嶺)이다. 물이 적고 토지가 척박해 과거에는 추풍령 인근에 메밀 농사가 주를 이뤘다. 백령은 새하얀 메밀꽃이 고갯마루를 뒤덮은 흰 고개라는 의미에서 유래됐다. 추풍령 아래 첫 마을이 김천 봉산면 광천리(廣川里)다. 시목(枾木), 죽막(竹幕), 돈목(敦睦), 송라(松羅), 곤천(坤川), 광동(廣洞), 당마루(唐嶺)등 자그마치 7개 자연부락이 점점이 고개 자락 곳곳에 박혀 있다. 이들 마을은 조선 말까지 충북 황간군 황남면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북 김천시 봉산면 관할이 됐다. 이때 광동(廣洞)의 광(廣)자와 곤천(坤川)의 천(川)자를 따서 광천리(廣川)라 했다. 광천리는 예로부터 경상'충청의 경계에 위치한 까닭에 자연스럽게 관할'행정구역이 수시로 바뀌는 운명을 맞았다. 그래서 주민들은 '경계'란 의미를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고 자연스레 이웃처럼 지내는 모양이다. 지금도 추풍령 면민들은 가까운 김천 전통시장을 주로 이용한다. 행정구역은 충청이지만 경제권은 김천이다. 또 광천리 주민 대부분은 추풍령면에 있는 초'중학교를 다녀 동창회는 영동 추풍령에서 갖는다고 말한다.
광천리 이충훈(78) 노인회장은 "행정구역상 김천과 영동으로 갈리지만 주민들은 이웃사촌으로 살아왔다"며 "왕래가 잦고 예전에는 광천리 사람들도 모두 추풍령에 있는 학교를 다녀 그냥 친숙하다"고 말했다.
◆유서 깊은 추풍령 아래에는 길을 따라 마을이 들어서
경상'충청 경계인 추풍령 아래에는 임진왜란 후 길을 따라 마을이 들어선다. 가장 아래쪽인 시목마을은 임란 직후에 파평 윤씨와 은진 송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마을 이름은 감나무가 많아 감나무골 또는 감나무 시(枾)자와 나무 목(木)자를 따서 시목(枾木)이라 했다.
시목을 지나면 당령교(唐領橋)로 불리는 다리가 나오고 그 왼편으로 죽막(竹幕)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추풍령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에 위치한 관계로 일찍이 주막이 들어섰다. "마을 대나무밭 옆에 주막이 있어 주막거리 또는 대나무집 주막이란 뜻의 대막골로 불렸다.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죽막(竹幕)이라 했다"고 마을 노인회장이 설명했다.
특히 마을 주막은 임진왜란 때 관군의 작전회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임진년(1592년) 4월 23일에 김천에서의 첫 전투인 김천역 전투에서 패한 경상우도 방어사 조경(趙儆'1541~1609)이 흩어졌던 군사 500명을 모아 추풍령에 집결시킨 뒤 이곳에 머물며 작전을 지휘했다. 지금도 주막의 흔적이 전하고 있다. 김천에 진출한 왜병이 북상키 위해 추풍령 아래로 주둔하자 야간에 정기룡 장군이 황소꼬리에 불을 붙여 적진에 밀어 넣는 전술로 우왕좌왕하는 왜병 선발대룰 몰살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다음날 2차 전투에서는 왜병의 본대가 들이닥쳐 중과부적으로 관군이 패해 군사의 절반을 잃고 지금의 추풍령휴게소 서쪽 선계산(仙界山) 방면으로 후퇴했다고 한다. 하지만 추풍령 전투는 노도(怒濤)와 같이 밀려오는 왜병의 북진을 지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스님 예언에 따라 추풍령휴게소가 들어선 다락골
죽막마을은 경부고속도로가 마을 뒤로 지나고 추풍령휴게소와 고속도로 진'출입로가 들어서 마을의 규모가 더 커졌다. 추풍령휴게소가 들어선 일대의 지명과 관련해 흥미 있는 전설이 전한다. 옛날 이곳을 지나던 한 스님이 장차 전국에서도 이름난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 예언해서 이 골짜기를 다락골(多樂谷)이라 불렀다.
그런데 경부고속도로가 나면서 큰 휴게소가 생겨 연중 행락객으로 붐비고 있으니 필시 예사롭지 않은 예언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추풍령 휴게소가 들어선 후에도 주민들의 생활에는 큰 변화가 없다. 다만 마을 위를 지나는 추풍령 내리막 구간이 급경사로 운전자들에겐 마(魔)의 구간으로 악명이 높다. 때때로 수학여행 버스가 추락하는 등 대형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 주민들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최근에 내리막길 구간의 도로 선형이 크게 개선돼 사고가 줄었다는 주민의 말이다.
당령(唐嶺)마을은 당마루라고도 하며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과 접하고 있다. 옛날 한양으로 가려면 김천에서 가파른 고갯마루를 거슬러 올라가야 했는데 이 고개가 당나귀 등처럼 생겼다 하여 당마루라고 불렀다고 한다. 일설에는 당나라 군사들이 이 마을에 있었다는 우물 근처에 진을 치고 주둔했다 하여 당나라 당(唐)자를 써서 당마루 또는 당령(唐領)이라 했다고도 한다.
최근까지 당나라 군사들이 마셨다고 전해지는 우물이 있었고 또 죽막 아래의 다리가 당령교(唐嶺橋)로 당나라 군사들이 이 다리에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추풍령 고갯마루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물맛이 좋아 경상'충청도 구분이 없이 우물물을 함께 사이좋게 나눠 마셨다고 한다. 비록 추풍령을 경계로 행정구역이 다르지만 한우물을 마실 만큼 격의 없이 서로 화합하며 도움을 주고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김천'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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