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패션산업과 연애마케팅

입력 2012-09-19 07:31:09

화면 가득한 이메일들 사이에서 필요한 것만 걸러내며 업무를 시작한다. 기업의 무차별적 마케팅으로 얼룩진 우리의 일상이다. 스팸 메일과 문자, 업무의 맥을 끊는 광고전화까지 받다 보면, 제품에 관심이 가기는커녕 오히려 불매운동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마케팅의 홍수 속에서 좀 더 세련되고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에 비유하자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일방통행식의 대시는 여차하면 스토킹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오히려 은근한 방식으로 상대의 관심을 유도하는 게 진짜 고수다. 마케팅에도 소위 연애 고수의 '밀당' 전략이 필요하다.

10여 년 전부터 전 세계 젊은이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미국의 한 패션브랜드 A. 이 브랜드의 뉴욕 매장 입구에는 상의를 탈의한 멋진 남성 모델이 미소로 고객을 반겨주며 원하면 함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매장 안은 더 충격적이다. 클럽 분위기의 어두컴컴한 매장 안에는 할로겐 조명만이 제품을 무심히 비출 뿐, 소비자에 밀착 마킹하며 심적 압박을 가해오는 점원도 없다. 공간을 점령한 쿵쾅거리는 음악 때문에 귓속말이 아니고서는 점원과 대화도 힘들 지경이다. 나는 바로 이런 브랜드라고! 당신이 마음에 들건 안 들건 나는 나일 뿐! 이라는 식이다.

소비자에 매달리기보다 오히려 내 매력에 빠져볼 테냐 식의 애티튜드가 꽤나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나쁜 남자'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일까. 더구나 매장 전체와 제품에 감도는 중독성 있는 향수 냄새는 소비자의 이성을 마비시키며 브랜드의 감성적 매력을 극대화시키기에 이른다.

소비자의 오감을 자극하며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어필하는 A브랜드의 마케팅 전략은 경영학도들에게 오감마케팅으로 소개되곤 하나, 나는 이를 '연애 마케팅'이라 하고 싶다. 앞서 펼쳐진 모든 마케팅 장치들-모델, 조명, 음악, 향기 등-이 바로 소비자에게 연애를 걸기 위한 포석들이 아니었을까. 기존과 같이 일방적 무차별적 마케팅 공세 중 우연히 걸려든 매출보다는, A브랜드처럼 정교한 연애 마케팅 전략에 굴복당한 소비자들의 강력한 애호가 장기적인 브랜드의 성공으로 이끌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패션산업은 특히 연애 마케팅이 발휘되기 용이한 산업 분야다. 앞으로 많은 패션 브랜드가 고단수 마케팅으로 무장하여 차별화된 매력을 발산해주길 바란다.

매 시즌 소비자에게 과감히 작업 걸어올 브랜드들을 기다리며, 올가을에도 패션과의 달콤한 연애를 꿈꾼다.

조자영<한국패션산업연구원 패션콘텐츠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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