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테이블' 늘리는 도심 식당
혼자 밥을 먹는 일은 뒤통수에 쥐가 나는 일이다. 1인 가구의 증가로 영화관이나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이들을 보는 건 그다지 생소한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혼자 밥을 먹는 일은 아직 용기(?)를 내야만 가능하다. 고깃집에 홀로 앉아 불판을 앞에 놓고 고기를 굽거나 식당에서 혼자 음식을 기다리는 모습은 타인의 눈길을 끌게 한다. '어쩌다 저 사람은 밥 한 끼 함께 먹을 사람이 없는 것일까?" 심지어 혼자 식당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최근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혼자서 식사하는 당당한 나홀로 식사족들이 늘고 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삼삼오오 떼를 지어 밥을 먹어야만 한다는 의식도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 때마침 혼자서도 여유 있고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음식점이 대구 도심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1인분만 주세요'
11일 찾은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식당. 점심식사 시간을 맞아 손님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여느 식당 풍경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손님들이 앉은 곳은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쳐진 1인용 식탁. 나홀로 손님만을 전문적으로 받는 1인 전용식당인 이곳은 혼자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식점이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이곳은 달그락거리는 수저 소리가 간혹 정적을 깰 뿐 왁자지껄한 일반 음식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서빙을 하는 종업원들도 손님들의 조용한 식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칸막이 앞에 마련된 커튼 밑으로 음식을 내어 놓고 있었다.
이곳은 2년 전 '나홀로 손님'만을 위한 1인 전용식당으로 문을 열었다. 아무리 맛난 음식이라도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지루하고 따분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식당은 '나홀로 손님'을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다. 쿠폰 10장을 모아서 가면 한 번의 식사가 무료로 제공되고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는 손님들을 위해 앱을 통해 쿠폰을 내려받으면 할인해 주기도 한다. 식사를 맛있게 한 후 계산할 때는 계산대에서 종업원과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통해 이기면 500원을 할인해 주는 행사도 펼치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직장인 김성호(42) 씨는 "혼자 밥을 먹을 일이 많아 자주 들른다. 칸막이 덕분에 혼자 먹어도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아서 좋다.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일상의 작은 행복이 됐다"고 했다.
◆1인 식당 전성시대
대구 동성로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최근 이 일대를 중심으로 1인 전용식당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최근 1년 사이에 1인용 테이블을 마련하고 '나홀로 손님'을 받는 곳이 10여 곳 정도 생겼다. 또 1인 전용식당은 아니지만 1인용 테이블들을 갖춘 음식점들도 생겨나고 있다.
1인용 테이블은 카페, 레스토랑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식당뿐 아니라 술집 등에서도 나홀로 손님을 위한 1인 상품 개발과 1인 좌석을 잇따라 배치 중이다. 달구벌대로 방향으로 로데오거리 끝 지점에 위치한 '튀김공장'은 아예 1인용 손님을 받기 위해 의자를 도서관 열람실 좌석 형태로 배치하고 있다. 통신골목 인근에 있는 1인 전용 음식점인 '콤마'는 독서실 칸막이처럼 좌석을 개조해 '나홀로 손님'의 아지트가 되고 있다. 중구 옛 중앙시네마 맞은편에 위치한 '퀴즈노즈'는 1인 좌석만 배치해 놓았다. 행인들이 식당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지만 고개만 살짝 돌리면 바깥 전경을 즐길 수 있다. 옛 제일서적 부근에 지난 7월 문을 연 '아딸'도 전체 좌석 중 절반 정도가 1인용 의자로 채워져 있다.
◆일반식당도 '1인용 열풍'
1인용 식당의 등장으로 일반식당의 풍경도 바뀌고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나홀로 손님만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는가 하면 다수의 손님보다는 2, 3명을 위한 '작은 공간'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혼자 앉기 편한 목로(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상) 형태의 식탁이나 도서관 열람실처럼 커다란 식탁들도 생겨나고 있다. 커다란 식탁은 보통 6인용 식탁과 길이는 비슷하지만 폭은 더 넓어 맞은편에 사람이 앉더라도 자연스레 거리를 둘 수 있어 혼자 식사하기에 편하다.
패밀리레스토랑이나 프랜차이즈 식당들의 경우 식탁이 4~6인용 중심에서 2인용이 늘고 있다. 아예 나홀로 손님들을 위해 창가 쪽을 이용해 한 사람이 편안히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거나 2인용 식탁 비율을 20~30% 이상 늘리고 있다. 동성로의 한 식당 주인은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늘면서 기존 4인 식탁 일색의 구성이 무너지고 있다"고 전했다.
음식점들은 1인용 식사 공간 확대와 함께 1인용 메뉴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식당 한쪽에 목로 형태 식탁을 만들고, 메뉴에도 '싱글 메뉴'를 따로 마련한 곳도 생겨나고 있다. 양순남 대구소비자연맹 국장은 "그동안 고기 먹는 식당은 2명이 가도 3인분 이상 시켜야 할 정도로 서비스 업종에서만큼은 손님들이 '착한 소비자'가 돼야만 했다. 그러나 최근 1인 가구 증가 등에 따라 이에 맞춘 서비스가 나타나고 있어 다행이다. 다만, 요즘 소비자들은 작은 사이즈 안에 많은 기능이 포함되길 원한다. 이런 모순을 뛰어넘어 얼마만큼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고 말했다.
◆배달업계도 변화 바람
나홀로 손님의 증가로 배달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중국집이나 배달 가능 식당들이 흔히 고수하는 원칙 중 하나가 '2인분 이상 배달 가능'. 그러나 이 원칙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최근 '1인분 배달'을 원하는 손님들이 부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삼성반점은 최근 이 원칙을 과감히 깨고 1인분 배달에 나서고 있다. 이곳 임태용 사장은 "음식을 주문하는 손님 5명 중 1명은 1인분 배달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불황 탓도 있지만 손님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1인분 배달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영업의 불황도 1인용 배달산업을 키우고 있다.
북구 태전동에 있는 분식전문점 '김밥과 함께'도 최근 1인분 배달을 시작했다. 이곳 윤계옥 사장은 "만둣국, 떡라면 등을 1인분만 주문하는 손님들이 많다.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남는 장사는 아니지만 '나홀로 손님'이 언제든지 '단체 손님'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에 나홀로 손님 잡기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1인 식당 미래는 '장밋빛'
나홀로 식사족과 이들을 위한 1인 식당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외식업 전문가들은 "나홀로족이 급증하면서 1인용 식당까지 소비 단위가 쪼개지고 있다. 20년 뒤에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수의 절반을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늘어날 전망인 만큼 미니 소비 트렌드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실제 1인 가구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0~2035년 시'도별 장래 가구 추계에 따르면 2035년의 1인 가구 수는 762만8천 가구(34.3%)로 2010년 415만3천 가구(23.9%)보다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대구의 경우 2035년 전체 가구 수는 98만8천 가구로 2012년 89만 가구보다 1.1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북의 2035년 전체 가구 수는 125만 가구로 2012년(103만9천 가구)에 비해 1.2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동성로의 '맴두 규젤 스타케밥' 대표는 "나홀로 손님을 겨냥한 마케팅은 외식업계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자리가 없어 손님을 돌려보낼 필요도 없고 테이블 회전율도 빨라 매출에 1석2조의 도움이 된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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