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거래] 용산역 벼룩시장

입력 2012-09-13 14:28:22

안 쓰는 물건 팔아서 번 돈 "팍팍 기부합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처음 등장한 '벼룩시장'(flea market). 벼룩이 들끓을 정도의 고물을 판다는 뜻에서 벼룩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물론 지금의 벼룩시장에 벼룩은 없다. 이웃끼리 필요 없는 물건을 사고팔고, 때로는 연륜이 묻어나는 명품을 싼값에 건지기도 한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전 11시 대구도시철도 2호선 용산역에 가면 학용품과 장난감 등을 가지고 나와 파는 고사리손을 볼 수 있다. 판매자의 40~50%가 어린이들이다. 이들은 자기가 쓰던 학용품과 책 등을 가져와 100~1천원 선에서 판다. 이외에도 일반 중고 물품과 목걸이, 귀고리 등 수공예품도 보인다. 옷 한 벌에 1천원, 털북숭이 인형은 500원, 세련된 가방은 5천원….

8일 벼룩시장에 참여한 남매인 강효영(13) 양과 효빈(11) 군은 "개장한 지 30분도 안 돼 책과 문구류 등을 팔아 2만5천원이나 벌었다"며 "오늘 번 돈 가운데 조금만 챙기고 나머지는 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머리핀 등 액세서리 등을 팔러 나온 김미정(36·여) 씨는 "자리를 펴자마자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다"며 "아무래도 내가 예뻐서 장사가 잘되는 것 같다"고 까르르 웃었다. 김 씨는 옆자리에 물건을 펼친 사람과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을 벼룩시장의 매력으로 꼽았다.

이날 율원중학교 창업동아리반 학생들도 참여해 자신들이 만든 머리띠와 이어캡, 머리핀 등 액세서리를 판매했다. 1학년 강유경(14) 양은 "처음 참가했는데 너무 재미있다"며 "번 돈과 체험비는 전액 기부할 계획"이라고 했다.

벼룩시장 물건값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정없이' 떨어진다. 파장(오후 1시)이 가까워지면 처음 가격에 비해 절반 이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물건이 좋아 좌판을 벌이기 얼마 되지 않아 다 팔아 좌판을 거두는 사람도 보인다. 막바지가 되면 셔츠 등은 공짜나 100원만 주고 가져갈 수 있다. 장사가 안돼 뽀로통한 한 아주머니는 지나가는 어린이에게 "학생, 이거 그냥 가져가라"라며 예쁜 니트를 흔들었다.

달서구청 배대환 씨는 "자신에게 필요 없어진 물건을 팔 수 있고,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 참여자가 점점 늘고 있다"며 "수익금의 30%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이기 때문에 좋은 일도 함께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벼룩시장 유래

벼룩시장은 프랑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벼룩시장은 불어로 마르쉐 오 퓌스(March Aux Puces)라고 한다. '퓨스'(Puce)라는 단어가 '벼룩'과 '암갈색'이란 뜻을 함께 지니고 있어 갈색조의 오래된 가구나 골동품을 사고파는 시장을 의미한다는 것. 또 벼룩이 사람 몸을 옮겨 다니듯이 물건들도 주인을 따라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닌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벼룩시장'이란 말은 영어 '플리마켓'(flea market)이나 독일어 '플로마르크트'(Flohmarkt)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어를 번역한 것이다. 독일 벼룩시장 안내판에는 '플로마르크트' 외에도 '트뢰델마르크트'(Trodelmarkt)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플로마르크트가 프랑스어 벼룩과 시장을 빌려 쓴 차용 번역어라면 트뢰델마르크트는 순수한 독일어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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