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선택' 뇌사자 장기기증 크게 늘었다

입력 2012-09-06 09:53:16

5일 밤늦은 시각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 수술실. 뇌사 판정을 받은 한 환자의 몸에서 신장과 간을 적출하는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자발적 호흡을 하는 식물인간 상태와 달리 뇌사는 심장만 뛰고 있을 뿐 뇌의 기능이 모두 죽은 상태.

아직은 온기가 남아있는 누군가를 영영 떠나보낸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큰 결심을 했다. 아픔을 나눔으로 치유하기로 한 것이다.

떼어낸 신장은 조직적합 판정을 받은 두 환자의 몸에 곧장 들어갔다. 간은 밤길을 서둘러 다른 지역으로 옮겨져 누군가에게 새 생명을 선사했다. 그렇게 한 생명은 조용히 사그라졌고, 세 명의 생명은 환하게 타올랐다.

앞서 경북대병원에서도 갑작스레 의식을 잃은 뒤 끝내 깨어나지 못해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 2명이 간과 신장, 각막 등을 기증해 생명을 잃거나 실명 위기에 놓인 환자 8명에게 새로운 삶을 되찾아 주었다.

김모(40) 씨는 지난 7월 쓰러진 채 발견돼 119구급대의 도움으로 포항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뇌사상태가 지속됐다. 생존 가능성이 없음을 알게 된 가족들은 눈물을 머금고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 경북대병원으로 이송된 김 씨는 적출 수술을 통해 간과 양쪽 신장 및 각막을 기증해 5명에게 생명을 나눠준 뒤 영면했다.

정모(56) 씨도 갑작스레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계속 치료했지만 상태는 악화됐고, 경북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정 씨 역시 뇌사 판정을 받았고 간과 양쪽 신장을 떼어내 3명에게 생명을 주고 떠났다. 올 들어 경북대병원에서는 장기기증자 5명이 모두 18명의 환자에게 새로운 삶을 찾아주었다.

최근 들어 뇌사자의 장기기증 이식이 크게 늘고 있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신장의 뇌사자 기증 이식수술은 2000년 100건에 불과했지만 2006년 261건으로 늘어난 뒤 2011년 668건으로 급증했다. 올 8월까지만 벌써 513건이 이뤄졌다. 10여 년 전만 해도 전체 신장 이식 중 뇌사자 기증은 20%도 채 안 됐지만 현재는 40% 이상이다. 관계기사 3면

생체 이식이 절대적으로 많았던 간에서도 뇌사자 기증이 크게 늘었다. 2000년 우리나라 전체에서 34건뿐이던 뇌사자 간 이식은 2006년 118건에서 2011년 314건으로 무려 9.2배나 늘었다. 올 8월까지는 이미 237건이나 이뤄졌다.

각막의 경우 기증 형태로 나눠볼 때 뇌사가 오히려 사후보다 많아졌다. 2000년 뇌사는 74건, 사후 130건이던 것이 2011년 뇌사 356건, 사후 246건으로 바뀌었다. 올 들어 뇌사는 241건, 사후는 114건으로 2배 이상 많아졌다.

대한이식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조원현 교수(계명대 동산병원 혈관외과)는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에 직계가족이 한쪽 신장이나 간 일부를 떼어주는 생체이식이 비정상적으로 많았다"며 "하지만 최근 뇌사상태가 자발적 호흡이 가능한 식물인간과는 다르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관계 법령도 바뀐 덕분에 뇌사자 장기기증이 크게 늘고 있다"고 했다.

심장이 멈추고 나면 사실상 장기 적출은 불가능해진다. 뇌사자 기증이 더욱 소중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지역 대학병원 한 관계자는 "비록 최근 숫자가 늘었다고는 해도 실제 기증이 이뤄지는 경우는 사망 환자의 1%도 채 안 된다"며 "장기기증에 대해 지역민들의 인식이 보다 긍정적으로 바뀌고, 이를 지원할 제도적 뒷받침도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