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선과 물레방아

입력 2012-08-29 11:01:43

18대 대통령 선거가 112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은 여러 가지 면에서 지난 17대 대선과 비교가 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대선은 예측이 가능한 승부였다. 그 결과에서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정동영 열린우리당 후보를 500만 표가 넘는 차이로 이기는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결과를 점치기가 녹록하지 않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된 박근혜 후보와 장외 대선 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양자 대결 지지도에서 박빙의 승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안 교수가 대선에 나설지, 다음 달 중순쯤 선출될 민주통합당 대선 주자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도 대선 결과를 내다보기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민주당 경선에서 초반 기세를 올리고 있는 문재인 후보가 최종적으로 당의 대선 후보가 될지도 관심사다.

대선 후보들과 안 교수 등 당사자들과 정당들로서는 어렵고도 괴로운 일이겠으나 대선을 지켜보는 국민들로서는 어느 대선보다 흥미를 안겨주는 게 바로 18대 대선이다. 사족(蛇足)을 달자면 정치부 기자들도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다"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이번 대선을 평가하자면 대한민국의 역동성(力動性)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고 볼 수 있다. 보수와 중도, 진보 등 대선 후보들이 갖고 있는 이념'정책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저마다 가진 경력들도 특장이 있다. 대통령을 선택하는 유권자들로서는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갖고 있는 용광로(鎔鑛爐)와 같은 기능을 잘만 발휘한다면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음 대통령이 갖춰야 할 리더십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소통과 통합, 위기 돌파, 미래지향과 혁신, 희망의 리더십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온갖 비바람이 몰아치는 격랑의 21세기, 대한민국호(號)를 이끌어 가야 할 대통령으로서는 당연히 갖춰야 할 리더십이다.

이 가운데 가장 방점(傍點)을 찍고 싶은 리더십이 희망과 미래가 아닐까 생각한다. 혼돈과 갈등으로 상처받은 국민에게 희망과 자신감, 믿음을 주는 게 대통령의 중요한 역할이다. 또한 역사적 전환의 본질'의미'방향'과제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에 입각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다음 대통령이 수행해야 할 책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대선 국면에서는 희망과 미래보다는 '날 선 비판'과 '과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5'16과 유신 등 수 십 년 전의 일들이 이슈가 되고 있고 이를 둘러싼 공격과 방어가 대선판을 어지럽히고 있다. 후보들의 과거 행적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일도 다반사다.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 차원에서 후보들의 과거를 들추고 살피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 사람의 미래를 알려면 과거를 살펴보라'는 말처럼 후보들의 과거 언행에 대한 검증은 필요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선의 한 부분일 뿐이다.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대선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21세기는 과거의 패러다임(paradigm)으로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다. 20세기의 낡은 패러다임을 청산하고 새로운 세기에 걸맞은 패러다임으로 무장을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청렴, 투명성, 개방성, 탈권위주의, 분권과 분산, 소통과 협력, 양성평등 등을 미래형 리더십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언론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만 관심을 쏟아왔다. 상대적으로 '어떤 대통령이 필요하냐'는 데엔 등한히 한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이 구현해야 할 패러다임은 무엇이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선 어떤 리더십을 갖춰야 하느냐는 논의가 이제부터라도 폭발적으로 전개돼야 할 시점이다. 과거에만 함몰돼 미래를 보지 못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대한민국의 앞날을 담보할 수 없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듯이 과거에만 붙잡혀서는 다가오는 미래를 우리 것으로 만들기 어렵다. 대선 후보들이 적극적으로 희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들도 여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 석 달여 남은 대선에서 과거 아닌 미래가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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