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겐 정말로 이상하게 생각되던 점이 있었다. 하늘이 파란 이유는 빛의 산란 때문이고, 붉은 노을은 빛의 회절 때문이라고, 세칭 '중딩' 때 배웠건만…,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에 어찌 그리 당당하며 당연시할 수 있는지, 왜 그것을 하찮고도 무익한 지식으로 취급하는지 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분위기는 인문학적인 상식이 없으면 매우 수치스럽게 여겼고,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을 은근슬쩍 혹은 노골적으로 무시하기도 했다. 이와는 달리 자연과학과 관련된 지식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너무 전문적'이라 백안시되어도 상관없다는 데 대부분 동의하였다. 자연과학과 관련된 초보적인 지식은 큰 노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고 그런 노력 때문에 감성이나 상상력이 감소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자연과학이 밝혀놓은 세계의 원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가동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힘과 거리를 이리저리 재보며 보다 수월하게 일을 처리하고, 일상을 좀 더 편하고 쉽게 버티기 위해 온갖 궁리를 짜내서 얻게 되는 지혜는 대부분 '환경과 나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는 데서 생겨난다. 이를 두고 어느 과학자는 지혜롭게 대처하는 우리 신체를 '붙박이 물리학'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한때 우리는 마음을 살찌우는 일에 있어서 편식이 매우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동원하여 아이큐(IQ)에다 이큐(EQ)까지, 전인적인 인간의 계발 교육을 꿈꾸는 요즘은 외면적으로 이과니 문과니 하는 구분과 태도의 편식이 많이 흐려진 듯하다. 또한 '통섭' 등의 이름은 엄격했던 분과(分科)의 경계를 허무는 데 기여하고, 첨단 과학기술 매체와 그에 관한 지식에서부터 몸 자체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을 전방위(全方位)로 다루는 혼성적인 예술 상황도 여기에 일조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공통의 가치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의 창조성'이 아닐까 한다. 아마도 우리는 이 점을 인간성을 구현하는 데 으뜸 가는 가치로 평가하는 것 같다. 으뜸으로 생각하는 이 가치를 배우고자 여러 분야에서 전문 연구자들, 활동가들, 작가들을 골고루 초청하여 강의를 청해 듣기도 하고, 작업실을 방문하거나 직접 체험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체험은 각자의 일상 속에 응용되면서 삶의 질이 보다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를 준다. 행복 예감이랄까. 이 같은 프로그램은 시간을 절약해서 재빠르게 성과를 내고자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창조성'은 누구나 이룰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지만, 의미 있는 결과는 소수에게 이루어진다. 이들의 결과물은 경제적으로 높은 가치가 매겨지며 경제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은 몇 번의 체험이나 경청만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활동은 각자의 소질 점검을 위한 최소한의 동기를 제공하고, 이 활동을 통해 공공적 가치와 공적인 재화를 마련해준 것에 대한 감사와 예의를 배우며, 공동의 가치를 통해서 말 그대로 상식을 단련하게 된다는 점이다.
개성적이고 무한히 자유로울 것 같은 '상상력과 창조성'은 이기적인 행복보다는 공공적인 가치와 의미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러므로 공적 자산에 관여하는 창조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은 공존을 위한 어떤 윤리에 자발적으로 구속된다. 이런 윤리는 사전에 미리 매뉴얼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그 윤리는 '현재 시점에서' 공존을 위해 맺을 수밖에 없는 최고 수준의 약속을 그려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약속은 사욕(私慾)이 깃들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가장 높은 수준의 약속인 것이며 그렇기에 최고도의 궁리와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어느 철학자는 이와 관련된 창조성을 기성(旣成)의 모든 의미가 지워진 상태에서 새롭게 등장한다는 의미에서 '무로부터의 창조'라고 표현한 바 있다. 여기에는 행복 예감에 앞서 손해 좀 봐야 한다는 점이 우선시된다. 인문학적인 상상력과 과학적 창조성의 이런 측면은 이기심에 찌든 사회 전체의 피로감을 상당히 줄여주는 길이 될 것이다.
남인숙/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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