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낡은 담벼락 아래
깨꽃 화분들 나란히 앉아 나를 본다
올망졸망 그렇게 앉아서
이렇게 아무데나 던져져도 잘 산다고
비좁은 세상이 마음에 안 들어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운다고
그렇구나
가난한 집안 살림 밑천이 돼야 해서
가발공장 직물공장 전전하며
봄이 와도 잎도 꽃도 피워보지 못한 들깨꽃 난희 이모
아플 틈도 없이 살았는데
이제 허리 굽어 일어나지도 못하는구나
난희 이모 보러 가는 길
들깨 화분 가만히 들여다본다
벌집 같은 꼬투리 속 다닥다닥
죽은깨 얼굴
깨알같이 눈물 박혀 있는 난희 이모 얼굴
그 곁에 앉아 울고 있는 깨꽃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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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물에서 무엇인가를 겹쳐 읽는 일은 단순한 시적 기교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마치 그물코처럼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인의 눈에는 모든 것이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이 시에는 평소라면 아무 관련도 없을 난희 이모와 들깨꽃이 겹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낯설어 하지 않을 겁니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아무 데나 던져져도 잘 사는 들깨꽃과 공장을 떠돌며 억세게 살아온 난희 이모가 이미 혈연임을 알 테니까요.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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