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우리의 아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있다. 오히려 아픔은 '살아 있음'의 징조이며, '살아야겠음'의 경보라고나 할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 그 진실 옆에 있다는 확실한 느낌과, 그로부터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불안한 느낌의 뒤범벅이 우리의 행복감일 것이다. 망각은 삶의 죽음이고, 아픔은 죽음의 삶이다.(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중에서)
벌써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어느 봄날, 흐릿한 저녁 빛이 학교 도서관의 한 귀퉁이로 스며들 때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문제는 우리의 아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에 있다는 말. 그 글귀에 오래 머물렀다. 우리는 아프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지금 우리가 '아프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다 받아들이면서 시간을 살아가고자 하는데도 여전히 아프다. 아픔은 내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나를 아프게 하는 그것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고 이렇게 슬픈가? 그렇게 생각하자 더욱 슬픔의 양은 많아졌다. 왜 나만 이렇게 아프고 이렇게 흉터로 마음과 몸을 채우는가? 그렇게 생각하자 흉터는 더욱 늘어났다. 왜 슬픔 뒤에는 기쁨이 오지 않고 다시 슬픔이 오는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렀다.
시간은 기묘한 힘으로 나를 지배했다. 난 시간 속에서 길을 걸어가는 작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자 묘한 안도감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슬픔이나 흉터, 그리고 상처들이 내 몫이 아니라 시간의 몫이라는 깨달음. 내 몸을 지배하던 슬픔이나 상처, 흉터들이 허깨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이후에도 그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내 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건 시간의 몫이었기 때문에 난 그냥 시간 속으로 걸어가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추억이라는 모습으로 현재 내가 살아가는 이유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다시 아프다. 현재를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아픔이 나를 아프게 한다. 아이들이 아프다는 사실에 대해선 누구나 공감한다. 그럼에도 왜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아이들은 여전히 아프고 앞으로도 아플 가능성이 많다. 왜 아픈지도 대부분 알고 있다. 관건은 실천이다. 아픈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마음으로 작은 부분부터 실천해야 한다.
전라북도 김제에 가면 J학교가 있다. 중'고교가 함께 있는 소위 대안학교다. 아름다운 도서관이 있다는 소식에 전국 독서담당 전문직들이 거기 모였다. 도서관을 견학하고 독서정책 워크숍도 하기 위해서였다. 그 학교는 "'왜?'라는 질문 속에 인문학적 사유와 사색을 통한 도서관 중심의 인문학을 실현해보고자 학교의 문을 열었다"고 했다.
학교에는 담장이 없었다. 학교를 지을 때 도서관을 가장 먼저 설계했고, 모든 교실이 도서관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한없이 밝았다. 도서관에서 만난 교장 선생님께 물었다. "이 학교 아이들은 문제가 없지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이랬다. "문제가 없으면 그게 아이인가요? 선생님은 아이일 때 문제가 없었나요? 여기 아이들도 다투고 미워하고 경쟁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이들 아닌가요?"
가슴 한 부분이 찡하니 울렸다. 맞아. 아이들은 원래 문제가 있구나. 어른인 나도 문제가 있는데 아이들이 문제가 없다면 그게 이상하지 않나? 모든 아이들은 문제가 있다. 그 아이들은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지 '문제아'가 아니다. 그렇다. '문제가 있는 아이'를 '문제아'로 만들지 않고 아름다운 어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무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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