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서경식 지음/반비 펴냄
'재일조선인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이 책의 저자, 서경식은 재일조선인 2세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가 어릴 때 할아버지에 이끌려 일본에 왔기 때문에 재일조선인 3세에 가까운 2세다. 민족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다. 청년 시절에는 군부독재 시대여서 조국인 한국을 방문할 수 없었고, 2006년 연구교수로 한국에서 지내면서 비로소 한국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에는 일본 국적을 갖지 않은 재일조선인이 약 60만 명가량 살고 있다. 귀화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100만 명이 훨씬 넘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의 결과로 일본에 살게 된 조선인과 그 자손'이라는 의미에서 '재일조선인'이라고 총칭한다.
저자는 과연 한국 사람이, 재일조선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재일조선인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한다.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구성해 이해하기가 쉽다. 왜 이렇게 많은 재일조선인이 일본에 있는지, 일본 사람들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왜 그들은 전쟁이 끝난 뒤 조선으로 돌아갈 수 없었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조선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황순임이라는 여인의 삶을 예로 든다. 황순임은 조선에서 근처 마을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간다는 소문을 듣고, 일본에 있는 오빠를 의지해 가와사키로 도망쳤다. 신혼이던 황 씨가 일본에 있는 사이, 남편도 강제연행돼 규슈의 탄광으로 보내졌다. 부부가 따로따로 일본에 온 것이다. 탄광에서는 행동의 자유도 없고 편지 왕래도 뜻대로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느 날 '언제 오면 면회할 수 있다'는 남편의 편지가 왔고, 황 씨는 남편을 만나러 규슈로 떠났다. 밤새 기다려 기차표를 겨우 구했으나 일본어를 잘 모르고 '수상하다'는 의심을 받고, 3일간 스파이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결국 남편을 만나러 갈 수 없었다. 그것을 끝으로 남편에게서 연락이 없었지만, 황 씨는 그곳에 있으면 남편에게 연락이 올 것이라는 생각에 조선에 돌아가지 않고 몇 십 년째 계속 기다리고 있다.
전체 인구의 1%도 안 되는 재일 조선인이 엄청난 오해와 차별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은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상황이 잘 말해 준다. 관동대지진 당시 6천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조선인과 200명 이상의 중국인, 수십 명의 일본인이 학살당했다. 지진이 있던 날 저녁부터 '조선인이 방화하고 있다', '우물에 독을 넣었다' 등의 소문이 급속히 퍼져 일본인이 조선인을 습격한 것. 조선인을 찾아내 일본도와 쇠갈고리, 죽창 등으로 폭행해 죽였다.
그렇다면 이런 편견은 역사적인 사실일 뿐일까. 2011년 3월 일어난 동일본대지진 때 저자가 느낀 것은 충격적이다. 역사적이고 자연적인 대재해 앞에서, 일본의 인터넷에서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명확하게 쓴 글도 있을 만큼 유언비어가 퍼졌다. 신문에는 '외국인이 성폭행이나 절도를 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다'는 기사도 나왔다. 아직 재일조선인은 여전히 마이너리티이며, 그들에 대한 오해와 차별은 현재 진행형이다.
작가는 일본 사회에 대해 '일본 사회가 병들었다'고 진단한다. 자신감 상실과 타자에 대한 증오 때문에 자가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
저자는 우리에게 진지한 문제 제기를 한다. 이 책에 있는 '일본'이란 단어를 '한국'으로 치환해서 읽고, '재일조선인'이란 단어를 '이주 노동자', '국제결혼 이주자', '연변 조선족' 등으로 바꾸어 읽어보라는 것.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일본인에게 묻고 있는 질문들을 우리들에게 던진다. 책을 읽으며 재일조선인에 대해 차별하고 탄압한 '일본인'을 욕하던 우리는 아무런 답변을 찾지 못한다. 우리 역시 또다른 모습의 '일본인'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식민지 시대부터 지속되어온 제도나 생각을 바꾸어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저자는 세 가지를 제안한다. 역사를 포함한 사실을 아는 것, 개인과 국가를 동일시하지 않는 것,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것. 저자의 제안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우리도 혹시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에서 당했던 차별을 이주노동자들에게 가하지 않았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