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라(要時羅)의 조선어 솜씨는 유창했다. 대마도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의 통역을 한 '이중간첩'이었다. 고니시는 1597년 정유재란에 앞서 이순신 제거 작업부터 했다. 통역으로 조선 진영을 드나든 요시라를 이용했다. 조선 조정 내 반(反)이순신 낌새를 써먹자는 속셈이었다. 요시라는 고니시 정적(政敵) 가토 기요마사의 재침(再侵) 정보를 조선에 흘렸다. 조정은 이순신에게 가토를 칠 것을 명했다.
그러나 고니시 책략임을 눈치 챈 이순신은 적극 나서지 않았다. 선조는 이순신의 옷을 벗기고 '이순신 제거'에 열을 올렸다. 의심 많고 속 좁은 선조는 백성의 믿음이 두터운 영의정 류성룡이나 이순신을 불편하게 여기던 터였다. 이순신은 하옥됐고 류성룡 등이 옹호했다. 선조는 "비록 가토의 목을 베어오더라도 용서할 수 없다"며 "신하로서 임금을 속인 자는 반드시 죽이고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분노했다.
이때 이순신 구명 글이 상소 됐다. 우의정 정탁(鄭琢)의 신구차(伸救箚)다. "순신은 참으로 장수의 재질이 있으며, 수륙전에도 못 하는 일이 없으므로 이런 인물은 과연 쉽게 얻지 못할뿐더러, 이는 변방 백성들의 촉망하는 바요, 왜적들이 무서워하고 있는데, 만일 죄명이 엄중하다는 이유로 조금도 용서해 줄 수가 없다 하고, 공로와 죄를 비겨볼 것도 묻지도 않고, 또 능력이 있고 없음도 생각지 않고, 게다가 사리를 살펴 줄 겨를도 없이 끝내 큰 벌을 내리기까지 한다면 공이 있는 자도 스스로 더 내키지 않을 것이요, 능력이 있는 자도 스스로 더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일개 순신의 죽음은 실로 아깝지 않으나, 나라에 관계되는 것은 가볍지 않은 만큼 어찌 걱정할만한 중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마지 못한 선조는 물러섰고 이순신은 백의종군(白衣從軍), 뒷날 장렬한 죽음으로 생을 마쳤다. 류성룡과 함께 이순신 변호에 적극 나선 정탁은 관상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 관상감사도 지냈다. 마침 임란 발발 7주갑(周甲) 즉 420주년인 올해 정탁의 고향 예천에서 그를 기린 첫 국제학술대회가 15일부터 19일까지 열리고 있다. 나일성천문관과 별천문대가 있는 예천에서 관상감사를 지낸 그를 기린 국제 학술대회는 여러모로 의미 있다. 이들 시설과 관상감사 정탁을 연계한 천문 이야기가 곤충행사로 재미를 보고 있는 예천에 또 다른 흥행거리가 될지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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