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사고뭉치와 창조경영

입력 2012-08-15 08:00:00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두메산골에 살며 호롱불 아래서 공부를 했다. 한 번은 호롱의 석유가 교과서에 튀었다. 기름이 묻자 거친 종이 결이 매끈해지는 게 신기해 그만 호롱 심지를 꺼내 교과서 전체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교과서 앞뒤가 다 비치어 글씨를 볼 수 없게 돼 버렸다. 책이 귀할 때라 다시 구할 수도 없었다. 선생님과 어머니께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른다.

지금 내 나이 육십이 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고뭉치 노릇을 그만두지 못한다.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곧잘 '이것 한번 해보자' '이렇게 바꿔보자' 등으로 고집을 부려 직원들을 난감하게 한다.

원래 기계공구 유통업은 영세하게 머물던 분야였다. 거기에 품목은 늘어나고 체계화가 안 돼 한계가 많았다. 남들은 나를 보고 이 공구 분야에서 틀을 만들고 체계를 세운 사람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실은 알고 보면 사고를 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1996년, 영업직원들을 현장으로 보내면서 쉽게 주문받고 재고 관리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외국계 담배회사 사람들이 PDA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즉시 우리 회사에 적용했다. 그런데 모두 수입산 PDA였고 삼성에서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할 때였다. 통신기술도 안 좋은데다 소프트웨어도 덜 발달한 상태에서 도입한다고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것이 단초가 돼 지금은 아이패드를 활용해 고객관리를 하며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시스템을 구축했다.

인간의 뇌는 곤란을 느끼지 않는 한 지혜를 내지 않는다. 필자는 해외출장 시에도 노트북을 꼭 가지고 다닌다. 노트북 하나면 세계 어디를 가든 내 업무실은 착착 돌아가게 된다. 예전에는 팩스나 전화로 보고를 받고 다시 손으로 적어 보내주는 등 불편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온라인 업무 시스템을 갖추었다. 사장이 자리에 없다고 업무 결정이 늦어지는 일은 없다. 말단사원의 제안에서 대표이사의 결재까지 채 하루가 걸리지 않는다. 처음 전산을 개발할 때 회사 규모에 비해 과하게 욕심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늘어나는 물류량과 업무량을 지금 다 소화해내지 못할 것이다.

물론 모두 다 성공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말로 다하기 힘들 만큼 실패도 많이 했다. 하지만 실패를 많이 할수록 그 끝에 이룬 성공의 가치는 어마어마하게 큰 것이었다. 한계를 넘어 맘껏 자유롭게 일하고픈 꿈이 지금의 우리 회사를 만들었다.

며칠 전 끝난 런던올림픽. 선수들의 땀과 눈물의 드라마를 보며 그동안 얼마나 많이 실패하고 다시 도전했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수영, 체조, 구기종목 등은 그동안 우리에게 한계가 많다 했던 분야였다. 그런데 결국 이뤄가는 모습을 보며 세상에 안 될 것은 없구나 싶었다. 선수와 감독들은 아마도 사고뭉치였을 것이다. 남들이 어렵다 해도 기어이 연습하고 해내는 사고뭉치 중의 사고뭉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고를 칠 때는 신이 나야 한다. 그 운동이 좋아 고통에서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덧붙여 올림픽 때문에 신이 났던 얘기를 하겠다. 축구에서 한국이 일본을 이기며 동메달을 거머쥔 것은 한일 양국의 미묘한 역사적 갈등 아래서 성취한 것이라 가슴이 뛰고 또 뛰었다. 이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어 바로 그날 아침 직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대한민국 축구 동메달! 신난다. 상금 쏘겠습니다."

물론 나 역시 하나의 소시민인지라 돌아서면 돈이 아까운 사람이다. 하지만 일이란 신이 나고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 멈칫거리면 때가 지나가 버리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경영을 하면서 과감히 실행해 보는 일은 회사의 비전을 만들어 가치를 창조해내는 일이다. 그리고 창조는 실행을 해야만 비로소 결과를 얻는다.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하는 사고뭉치는 없다. 사고뭉치의 필수요소는 행동함에 있다. 사고를 치고, 한 번 해보고, 실패해도 해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위기의 시대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바가 아닌가 한다. 지금 '뭐뭐 때문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면 '실패해도 좋다'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겁 없는 창조를 이뤄 가시길 바란다. 진정한 사고뭉치는 신나는 사고뭉치이다.

최 영 수(크레텍책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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