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찾아가는 문화 마당'을 통해 어느 노인요양센터에 가게 됐다. 정식 무대가 아닌 곳에서의 공연이기에 더욱 분주했다. 한여름에 한복을 입은 채로 소품들을 옮기며 배우들 모두 더위에 지쳐 있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이기에 과연 공연을 집중해서 끝까지 보실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앞섰다.
'덩기덕 쿵덕' 북과 장구, 꽹과리 소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자 어르신들이 공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배우들도 어르신들의 적극적인 반응에 흥이 나기 시작했다. "몇 살이냐 해?" 중국인 장사꾼의 질문에 한 할머니는 멍하니 장사꾼의 눈만 쳐다봤다. "딱 보니 스무 살이라 해~." 장사꾼이 할머니의 나이를 정해주고 자리를 옮기자 옆에 있던 두 할머니가 장사꾼을 쳐다보던 할머니를 툭툭 쳤다. 무슨 말씀을 나누신 걸까? 세 할머니는 이내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스님 역의 배우가 음악 소리에 맞춰 신나게 목탁을 두드리며 심봉사에게 "눈을!"하고 외칠 때는 고개를 내밀고 집중하던 할머니가 깜짝 놀라 박수를 치며 물러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님 역을 맡은 배우는 몸무게가 할머니의 곱절은 넘을 100㎏의 거구였다. 할머니는 이내 자신이 놀란 것이 멋쩍은 듯 수줍게 입을 가리고 소녀처럼 웃었다. 그 모습에 센터 안은 다시 웃음이 가득 퍼졌다.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올리고 공양미에 팔려갈 때는 눈시울을 붉혔고, 뺑덕어미의 동작 하나하나에도 미소를 지었다. 심청이가 아버지를 다시 만날 때는 잘됐다며 박수를 쳤다.
공연이 끝나고, 한 할머니가 심청이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고생이 많다." 마치 심청이를 다독이듯 손을 잡고 쉽사리 놓지 못했다. 심청이도 그 손을 차마 놓지 못했다. 비록 나의 의지로 찾아간 무대는 아니었지만, 어르신들과 눈을 맞추고 함께 웃으며 배우들 모두의 마음도 나눔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봉사 활동은 늘 행동보다 핑계가 앞선다. 함께 나눠야겠다 마음을 먹으면서도 "바빠서…" "마음은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나도 힘들다" 등등 이런저런 핑계와 단절된 마음이 결국은 등을 돌리게 만든다.
더운 여름, 푸른 바닷가를 향한 멋진 휴가계획도 좋지만, 가족들과 또는 친구들과 더욱 보람있는 휴가계획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수영복 자국이 짙게 남은 휴가의 흔적보다 마음속에 깊게 뿌듯이 새겨진 휴가의 흔적을 남겨보는 건 어떨지. 낯선 이의 방문에도 가족을 만나는 것처럼 반겨주는 분들을 위해 올해 계획을 조금 바꾸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김하나 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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