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한의 마지막 황제였던 헌제는 군벌들에게 핍박받는 딱한 삶을 살았다. 9세 때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던 동탁에 의해 옹립돼 제위에 올랐으나 그저 눈치만 볼 수밖에 없었다. 동탁이 여포에게 암살되고 나서는 새로운 실력자 조조의 그늘에서 숨죽여 지냈다. 황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고 조조의 요청이 있을 때에만 재가하는 허수아비 신세였다. 헌제를 따르는 충신들이 조조에게 반기를 들기도 했으나 실패로 돌아가 아내인 복황후와 아들이 죽는 비극 속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결국, 조조가 죽은 뒤 아들 조비에게 강요당해 제위를 내주고 한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강한 군사력을 지닌 인물들이 왕조를 창건한 후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면서 문민 통제에 힘쓰는 일이 되풀이된다. 무장 출신이 황제가 된 후에는 무신들을 견제해 문민 우위의 원칙을 지켰고 무신보다는 환관들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많았다. 왕조가 유지되는 시기에 무신에게 휘둘린 후한의 헌제는 드문 경우였으며 문민 통제가 무너지면 왕조의 교체로 이어졌다.
오늘날의 중국도 문민 통제가 잘 이뤄지는 국가라고 할 수 있으나 최근 군부의 힘이 커져 지도자의 권위를 훼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올 초 한 연회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의 실세 중 한 명인 장친성 상장(한국의 대장에 해당)이 술에 취해 후진타오 주석 앞에서 행패를 부렸다. 장 상장은 자신이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는 것을 막는 모종의 움직임이 있다며 건배를 제의하는 한 사령관을 밀쳐내는 등 분노를 터뜨렸다. 불쾌해진 후 주석은 곧 자리를 떴다고 한다. 후 주석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녔던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장쩌민 등 전임자들과는 달리 군에 뿌리가 깊지 않으며 10년간의 집권을 마무리하고 퇴임을 앞둔 시기에 체면을 구겼다.
중국은 항공모함을 띄우고 영유권 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과정에서 군부의 발언권이 세졌다. 이에 대해 중국 지도부가 군을 대상으로 부패와 불복종 척결 캠페인을 벌이는 등 군부 제어에 나서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일어난 것은 공교롭다. 권력 교체기의 중국에서 이번 사건이 일과성에 그칠 수도 있지만, 군부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현실은 우리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므로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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