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임명직 의원님

입력 2012-08-07 07:17:23

얼마 전 매일신문 1면 머리기사로 실린 '꿀 먹은 TK 초선(初選) 의원들'이라는 보도가 서울 여의도 정가에 회자가 될 정도로 반향이 컸다. 기사의 내용은 19대 국회가 임기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소신을 갖고 능동적으로 의정 활동을 하는 대구경북 초선의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었다. 지역의 한 중진 의원은 "지역 의원들이 모인 자리가 있었는데, 의원총회든 대정부질문이든 당당하고 자신 있게 소신을 밝혀야 한다고 권유했지만 나서는 이가 없더라. 주눅이 들어 있는 모습에 답답했다"고 털어놓기까지 했다.

이 'TK 샌님' 이야기는 여의도 술자리에서 한동안 단골 안줏거리가 됐다. 여당은 물론 야당 의원들도 삼삼오오 모이면 이 이야기부터 '입가심'을 한다고 했다. 지역 3선 A의원은 "얼마 전 상임위의 동료의원과 오찬자리가 있었는데 갑자기 이 얘기부터 꺼내더라"며 "결국 어느 의원이 의원총회 등에서 발언을 제일 먼저 하는지 내기까지 붙었다"고 했다.

A의원은 그러면서 패기와 열정, 때로는 무모함으로 행정부 견제와 개혁 바람에 '소금' 같은 역할을 해야 할 TK 초선 의원들이 주눅이 든 이유에 대해 '대구경북 기질'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잰 체하거나 나서기 싫어하는 TK 정서, 점잖고 양반 기질(?) 강한 TK 사람들의 기질 때문이란 것이다. '의원총회에서 다른 의원들 얘길 들어보면 뭐 딱히 중요한 얘기도 나오지 않거니와 긴요하고 중한 결정을 하는 자리도 아닌데 뭐하러 나서느냐'는 분위기가 TK 의원들에게 팽배하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참 '꿈보다 해몽' 같은 덕담이다.

며칠 전 여당의 한 수도권 초선의원과 차 한잔 마시는 자리가 있었다. 여기서 슬쩍 TK 초선의원들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다른 해석을 꺼내놨다. "의원총회나 연찬회 등 당내 의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대구경북 의원들은 '임명직 의원'으로 불려요. '임명직 의원들이 발언을 뭐하러 하느냐'는 얘기들을 서울 등 수도권에서 어렵게 당선된 의원들이 농담 삼아 합니다. 여기서부터 TK 의원들은 기가 팍 죽지요."

정치권에선 TK 초선의원들이 '지역구 의원'으로서 주눅 들지 말고 당당히 자기 '브랜드'를 키울 것을 주문한다. 지역민이 똑같이 뽑아준 지역구 의원인 만큼 경쟁력을 높이고 자기 목소리를 내라는 요청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임명직'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한 원인이 뭘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 유권자들도 지역 의원들을 '약체'(弱體)로 만든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이는 요즘 새누리당의 공천 헌금 파문을 보면 더욱 고개를 숙이게 한다.

지역 출신 한 정치평론가는 인물이 아닌 당만 보고 찍는 지역의 행태가 우리 스스로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또 나아가 우리가 뽑아준 의원들을 국회에서 제대로 발언조차 하지 못하는 '식물 의원'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생산도 전국 꼴찌요, 소비도 7대 도시 중 최하위라는데, 경제 두 바퀴가 모두 푹 꺼진 대구경북이 언제까지 스스로의 활동 폭을 좁힐 것이냐는 말로 해석이 됐다.

개인의 역량보다 특정 당이 점찍어준 사람을 맹목적으로 선호하는 행태를 고치지 않는다면 지역 발전이 요원함은 물론이고 지역을 대변할 인물을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내뱉은 그 정치평론가의 한마디가 '촌철살인'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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