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읽기] 나도 모르는 개인파산, 부모 빚 때문이라면…

입력 2012-08-04 08:00:00

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

요즘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이라는 보도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렇기에 '화차'라는 이 책의 내용이 단순한 소설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20여 년 전 가계부채로 파산하는 일본 서민경제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그린 이 책은 당시 일본의 현실이자, 지금의 우리네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영화 '화차'를 통해서다. '저렇게까지 불행할 수 있을까'라고 할 만큼 절절한 한 여인의 비극은 배우 김민희의 살벌한 눈빛에 어려 아직 뇌리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 또렷한 이미지에 이끌려 원작에 손을 댔다.

휴직 중인 형사 혼마 숀스케에게 어느 날 먼 친척 청년으로부터 자신의 약혼녀 세키네 쇼코(아니 실제로는 신조 교코다)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쇼코가 결혼을 앞두고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다 심사과정에서 과거 개인파산을 신청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돌연 잠적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한 것은 그녀도 자신의 파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눈치였다는 점이다. 혼마는 처음에 단순한 실종 사건이라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이를 조사한다. 하지만 조사를 진행할수록 쇼코에게 엄청난 비밀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신조 교코'라는 인물은 독자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갖게 하는 묘한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빚쟁이들에게 끊임없이 쫓기고 괴롭힘을 당한다. 그녀는 어릴 때 사업 실패로 빚에 눌러앉은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신의 인생 전체가 망가진다. 평범한 삶이 무척이나 그리웠던 그녀이기에 엄연한 살인자인데도 무작정 돌을 던질 수 없다. 그녀의 처지는 본문에서 나오는 뱀에 비유된다. 뱀이 목숨 걸고 몇 차례나 허물을 벗는 것은 언젠가는 다리가 나올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다리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그녀를 쫓는 혼마의 입장이 돼 그녀에게 살인자라는 혐오감 대신 측은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현대사회의 어두운 현실에 씁쓸함과 답답함을 지울 수 없다.

영화를 보고 난 뒤라 전체적인 내용은 이미 아는 상태에서 책장을 넘겨 긴박감은 다소 떨어졌다. 하지만 원작이 영화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초반에 신용카드로 대변되는 신용사회의 맹점을 설명하는 부분은 장황해 글이 잘 읽히지 않지만 한편으로 그 같은 상세한 설명은 영화에서 부족했던 신용사회의 어두운 면을 좀 더 이해하게끔 하는 자양분이 됐다. 미스터리 형식을 띠고 있지만 현대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사회성 짙은 소설이면서도 한 여인의 기구한 인생 스토리를 담아낸 휴먼소설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출간된 지 수 십 년의 세월을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사랑받는 책이 아닐까 싶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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