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책쓰기도 어느 덧 중반을 지나고 있다. 역사를 주제로 만드는 자신만의 '핸드메이드' 책쓰기 작품이다. 2년째 아이들과 만들고 있는 책이지만 만들 때마다 새롭고 즐겁다.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이야기 속에서 울고 웃는 모습이 마치 내 일인 양 생생하게 다가온다. 여섯 명의 아이들은 하나의 큰 테마를 중심으로 자기 이야기를 소담하게 펼쳐나가고 있다.
여느 때처럼 책쓰기 모임이 있는 날이다. 시작 시간이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한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도 상황을 모르기는 매 한가지다. 1시간쯤 지나고 아이의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매우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글을 쓰는 속도가 매우 느려 다른 아이들이 여러 번 수정 작업을 할 동안에도 완성된 이야기를 제출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지난 모임 때 자신이 쓰기로 한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써왔기에 내가 이야기를 대충 읽어보고는 시대를 바꾸어보자고 말하였던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글을 썼던 아이에겐 적잖은 충격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름대로는 더 이상 손댈 수 없을 만큼 정확성을 기해 썼던 자신의 글을 고칠 수 없었기에 모임에조차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삼키고 또 삼키었다.
빠릿빠릿하진 않아도 차분하고 꼼꼼하게 일처리를 하던 아이의 성격에 맞게 글에서 내가 특별히 손댈 부분이 없었다. 맞춤법에 어긋나는 부분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이야기 속 인물은 자신의 성격에 꼭 들어맞게 말하고 행동하였으며 전체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물 흐르듯 흘러가고 있었다. 사소함이 부른 참사(慘事)가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를 만나 '네가 고민해서 쓴 꿈을 그대로 펼쳐도 된다'고 말하였다. 너의 이야기는 최고이고, 이야기에 걸맞은 그림을 옷 삼아 덧입혀보자고 했다. 아이의 그림 실력 또한 수준급이다. 그제야 아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아이의 글을 포함해 6명의 역사 이야기가 모여 '거꾸로 가는 시계'라는 책을 만들어냈다. "오래 걸렸지만 내가 글을 하나 쓰는 것이 이렇게 뿌듯한 일인 줄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는 학년이 바뀐 지금도 종종 우리 반으로 놀러온다.
이렇게 완성된 이야기가 9일 대구시교육청에서 책쓰기 동아리 우수 작품으로 출판이 된다. 5학년 사회 교육과정에 나오는 딱딱한 바게트 같은 역사는 아이들의 손을 거쳐 몽글몽글 부드러운 치즈케이크 같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만든 역사 이야기 속에서 나는 과거와 연결된 미래의 아이들을 만난다. 미래에서 만난 아이들의 입가에 띤 엷은 미소가 봄밤의 아카시아 향처럼 아득하게 번진다.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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