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 '분당 구도'될 것…수도권 중도·중산층 표심 확보가 관
손학규(64) 전 민주통합당 대표는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세종대왕 같은 '성군(聖君) 리더십'을 갖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그가 내세운 세종대왕 리더십은 '민생'과 '통합'이다.
"백성의 삶 속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한글 창제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구중궁궐에서 왕족과 사대부만 생각했다면 백성들이 글자를 몰라서 겪는 어려움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농부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니까 혼천의와 해시계를 만들어내고 농사직설을 펴내고, 국민 속에서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해내는 정치를 편 것이다. 자기가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한 황희를 불러 정승을 시키고, 천민 출신 장영실을 중용해 과학기술 발전에 앞장서게 한다든지, 이런 국민 통합과 사회 통합의 길이 세종대왕의 리더십이다. 서민 삶의 질 향상과 사회적 양극화, 차별과 격차 이런 것을 해소하기 위해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동아시아미래재단' 사무실이 입주한 종로의 빌딩에서는 청와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손 전 대표는 매일 청와대를 바라보면서 대권 의지를 가다듬고 있는 셈이다. 손 전 대표와의 인터뷰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손 전 대표의 대권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5년 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당시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전 대표 등과 함께 대선 후보 경선 레이스를 벌이던 손 전 대표는 탈당 후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손 전 대표에게 따라다니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그때부터 붙었다.
민주당 대표를 맡은 손 전 대표는 2010년 경기도 분당을에서 치러진 보궐선거에 직접 나서 강재섭 전 한나라당대표와 맞섰다. 손 전 대표는 그때까지 분당에서 한 번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을 정도로 새누리당 지지세가 강했던 분당에서 당선되면서 '분당 신화'를 만들었다.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그는 신화의 재연을 꿈꾸고 있다.
그는 "이번 대선은 분당 선거구도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전통적인 영남과 호남 간의 지역 대결 구도가 아니라 수도권에서의 중도'중산층의 표심이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대선이 지역 구도로 다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민주통합당으로서는 지지기반인 호남+PK(부산경남) 표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호남과 PK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수도권에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는 중간충과 중산층의 표심을 누가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PK 출신이 비PK 출신보다 PK에서 10% 더 득표력이 있다고 한다면 수도권 중산층과 중간층에서 3%만 우위를 보여도 더 낫다."
손 전 대표는 경기도 시흥이 고향인데다 경기도에서 국회의원을 지내고 경기도지사까지 역임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의 정치적 기반은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이다. 그러나 그는 "수도권이라는 것은 (출신에 따른) 지역 구도가 아니라 좌와 우, 중도 이런 데서 나오는 노선 구도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분당을 보선 전까지 이 지역에서는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내리 3선을 하는 등 새누리당 지지 성향이 아주 강했다. 손 전 대표는 "분당에서 민주당으로 나선 손학규가 당선된 것은 중산'중간층 표를 많이 끌어와서 이긴 것"이라며 "분당의 일반적 성향은 민주당이 30%, 새누리당이 50%를 넘겠지만 내가 50% 이상을 얻어서 당선된 것은 새누리당을 찍었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는 안 되겠다며 손학규를 찍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기본적으로 친(親)새누리당 성향이 강한 보수 동네이지만 새누리당 후보로는 안 되겠다, 소통이 없는 리더십으로는 나라를 안정되게 이끌 수 없다고 판단하는 중도층 유권자들이 손학규를 찍을 것"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손 전 대표는 문재인 상임고문과 김두관 경남도지사 등 당내 경쟁자에 비해 열세다. 당내도 약하지만 국민 지지도도 한 자릿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제가 부족한 점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지지도는 주로 이미지에 따른 지지도였다. 구체적인 콘텐츠에 근거한 지지도는 아니었다. 앞으로 콘텐츠 경쟁이 본격화되고 대선이 가까워지면 국민들은 누가 우리 살림을 낫게 해주고 누가 일자리를 더 줄 것인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판단을 할 것이다. 그런 검증과 경쟁을 거치면 달라질 것이다. 또 상대인 새누리당의 유력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싸워서 이길 사람이 누구냐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문 고문 등 민주당 내 경쟁 후보들에 대한 강한 비판과 평가를 유보했다. "지금은 당내 상대방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무엇으로 다가갈 것인가에 생각을 집중하고자 한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다음날 한 라디오방송에서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고문은 승리할 수 없다"며 문 고문, 김 지사 및 안철수 서울대 교수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이 박지원 원내대표-이해찬 당대표-문재인 고문 간의 '담합 구도'로 재편됐다고 지적하자 "이번 (전당대회) 선거는 누가 이겼다는 것보다 담합 구도에 대한 당과 국민의 반발을 확인한 것"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안철수 교수에 대한 그의 속내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대뜸 "안철수 교수도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원임에는 틀림없다"며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우리 사회의 백신과 같은 존재"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그 백신이 정치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고 민주당으로서는 안철수가 됐건, 누가 됐건 간에 '우리가 상수(常數)'라는 생각으로 자신감을 갖고 우리가 하겠다, 우리가 정권을 잡아 국민을 잘살게 하고 국민 통합과 남북 통합을 이뤄내겠다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며 안 교수와의 연대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듯했다.
새누리당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경선 룰이 민주당 내에서는 어떤 식으로 정리될까도 관심이다. 손 전 대표는 이에 대해 "기본원칙은 국민의 뜻과 가장 가깝게, 국민이 원하는 후보를 선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해질 것"이라며 "오픈프라이머리를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이번에 드러난 모바일투표의 폐혜를 없애거나 최소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모바일투표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분명해 보였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점이 당내 경선에서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시각과 관련, 그는 "당내 경선에서 그것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가 될 것"이라며 "민주당에 합류해서 대선 참패 후 민주당이 괴멸 직전의 위기에 처했을 때 당대표를 맡아 당을 구하고, 총선을 치러 지금처럼 민주당이 존립할 수 있도록 했고 지난번 당대표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수권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데도 역할을 했다. 그런 문제 제기는 당내에서 더 이상 없을 것이고,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다"고 대답했다.
당내 경선을 통과한 후 맞닥뜨리게 될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박 전 대표에 대해서는 복지정책과 진보정책을 펼쳐나가도 (박 전 대표와 걸맞은) 안정감을 주고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는 후보가 맞서야 한다"며 "박 전 대표와 경합하게 되면 소통의 문제가 대두될 것이며 민주주의는 위기 때 큰 힘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소통의 리더십을 갖추고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이 더 돼 있다는 비교우위의 자신감이었다.
그는 경기도지사 시절의 다양한 경험과 구체적인 실적을 내세웠다. 도지사로 재임한 4년간 정부 전체가 1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는데 경기도에서만 74만 개를 만들어냈고 매년 7.7%의 성장(경기도)을 기록한 '진보'이면서도 경제성장을 이끌어낸 실적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 직전 야권연대를 한 후 주한미대사관에 가서 한'미 FTA 폐기 서한을 전달한 것에 대해서는 "제1야당의 자세나 능력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져오도록 한 것이 사실"이라며 자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이 당대표로 있을 때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은 FTA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양국 간 이익이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재재협상을 하고 ISD를 폐기하는 수준이었다고 해명했다.
'민주당 대선주자가 될 경우,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는 계속될 것인가'라는 물음에 손 전 대표는 "통합진보당이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환부를 도려내고, 종파주의와 패권주의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불법을 자행하고 부정을 저지른 데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그 반성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 다시 국민의 시선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그가 말한 '환부'는 제명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이석기'김재연 의원이다. 그는 "두 사람이 자진 사퇴를 하고, 통진당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 칭했다. 그러면서 "진보도 성장을 할 수 있고 진보도 경제성장의 동력을 끌어낼 수 있다"며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실적, 경험과 성공 사례를 통해 '손학규라면 복지정책을 펴도 나라 살림 거덜내지 않고 하겠구나' 하는 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안정감"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다소 결단력이 없고 우유부단해 보인다'는 세간의 평판을 전했더니 그는 펄쩍 뛰며 이렇게 말했다.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이 한나라당을 나와서 시베리아 벌판에 섰겠느냐. 다들 떨어진다는 분당 선거에 나섰겠느냐. 또 그 난리를 치는 야권통합을 성사시켰겠느냐. 남들이 튄다고 해서 나마저 튀면 손학규의 안정감은 어디로 가느냐. 대통령이란 자리는 튀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들이 불안해한다. 뉴스거리를 만드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군이라는 것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도록 하는 것이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