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님을 위한 행진곡

입력 2012-06-21 11:09:39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유신 체제의 종말과 함께 등장한 신군부 정권을 타도하고 이 땅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이 지상 과제였던 시절, 청년 학생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가 되었다. 난발하는 최루탄 가스와 백골단(시위 진압 특수기동대)의 곤봉에 돌멩이로 맞서며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분노로 불렀던 '님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노래는 1980년 광주 민중항쟁 때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약하다 죽어간 한 청년과 야학운동을 벌이다 숨진 여학생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헌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공 정권 때는 금지곡이었던 이 노래는 이후 운동권 가요의 대명사가 되었다. 민주화와 노동운동은 물론 각 시민사회단체의 집회에는 '민중의례'의 하나로 애국가 대신 불렸다. 사뭇 비장한 노랫말과 느린 단조의 행진곡풍인 멜로디는 불굴의 저항 의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문민정부와 호남정권과 좌파정권까지 겪은 21세기 한국땅에서 아직도 이 노래가 대중의 가슴에 호소력을 지니고 있을까. 여기서 평생을 민주화와 진보 정당 운동에 헌신해온 주대환 전 민노당 정책위의장의 고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행사장마다 애국가를 대신하는 이 노래가 듣기 싫었다. 대중과 운동권을 정서적으로 가르는 노래였다. 다분히 고립되고 패배적인 분위기이다. 지나친 비장함은 일상에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다. 시대가 많이 변했는데, 언제까지 불러야 하는지…?"

그런데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한과 염원을 담은 '애국가'까지 폄하하며 공식 행사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부르기를 고집하는 정치집단이 있다. 그들만의 님, 그들만의 맹세, 그들만의 동지, 그들만의 새날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애국가를 부르며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던 독립운동가들, 환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애국가를 합창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임시정부 요인들, 애국가를 외치며 북한의 남침에 맞서 싸우던 군인과 학도병들,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애국가를 부르짖던 청년 학생들, 그리고 각종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애국가로 승리의 결의를 다지던 숱한 선수와 스타들의 삶은 누구를 위한 행진곡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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