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20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신용복 교수가 쓴 동양 고전 독법 강의 중 '묵자의 겸애와 반전평화'란 단락에 특히 주목했던 것은 그의 이력 때문일 것이다.
묵자(墨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한 사람으로 공자보다는 조금 뒤에 활동한 사상가이다. 여기서 묵(墨)은 성씨라기보다는 학파의 집단적 이름(墨家)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한다. 묵자는 겸애(兼愛)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교리(交利)라는 상생 이론을 내세웠다. 묵가는 이를 사상적 기반으로 연대라는 실천적 방식을 통해 사회문제 해결에 나섰던 것이다.
맹자의 표현에 따르면 '묵가는 보편적 사랑을 주장하며 정수리에서 무릎까지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었다. 검은 노동복 차림의 묵가는 전쟁을 반대하고 허례와 허식을 배격하며 근로와 절용(節用)을 주장하는 하층민이나 공인(工人)들의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 개혁성과 민중성으로 미뤄 중국 역사상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최초의 좌파 조직이었던 셈이다.
유가(儒家)의 모델인 주(周)나라의 계급사회가 아닌 하(夏)나라의 공동체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나, 기존 권력 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도 그렇다. 묵가는 반전평화의 기치를 내걸고 헌신적으로 방어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중 양국의 스타급 배우인 안성기와 유덕화가 출연한 '묵공'(墨功)이란 영화는 이 같은 시대와 사상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조나라 10만 대군의 침략에 맞선 양성(梁城)은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오로지 희망이 있다면 당시 반전평화를 추구하던 묵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원군으로 온 묵가는 단 1명. 그러나 그는 뛰어난 지략으로 양성을 지켜낸다는 이야기로, 전국시대 묵가 사상을 잘 대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대 세습이라는 전대미문의 공산왕조를 유지하기 위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북한에 묵가가 들어간다면 겸애와 교리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처방을 내놓을까.
인권 유린과 굶주림 그리고 전쟁의 공포로부터 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그토록 북한을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남한의 좌파들에게 묵가적인 도움을 요청한다면 이들은 또한 어떤 반응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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