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축제의 문화사 /윤선자 /한길사

입력 2012-05-31 14:03:16

프랑스 축제의 기원과 역사를 통해 본 축제의 의미

축제가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농경시절의 생활리듬에 맞게 치러왔던 전통적인 축제 대신 현대인의 생활리듬에 맞게 재구성된 요즘의 축제들은 형태도 내용도 제각각이다.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버라이어티 쇼와 간이천막의 음식들. 참가자들은 그저 구경하고 먹고 소비하는 객체에 불과할 뿐인 축제들을 보며 다른 축제를 꿈꾸었다. 공동체가 함께 기획하고 준비하여 즐기고 마무리하는 진정한 축제를.

한길사의 '이상의 도서관' 시리즈로 나온 윤선자의 '축제의 문화사'를 읽었다.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같은 시기 유럽 사회 전반에 고루 나타났던 축제의 본질과 형태를 포함하고 있다.

축제는 본디 이교적 기원을 갖고 있다고 한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다가오는 새봄을 축하하며 춤을 추고 있는 원시인들, 그들은 겨울잠을 자던 곰이 모습을 드러내면 봄이 멀지 않았다고 믿었다. 원시인들은 곰이 동면에서 깨어나는 시기를 전후하여 축제를 벌이며 봄을 맞이하였다. 그 시기가 대략 2월 2일경, 바로 오늘날의 육식일에 해당된다고 한다. 곰과 관련해 유럽에는 다양한 신화와 관행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것은 곧 카니발의 신화와 관행으로 이어진다.

계절과 시간의 순환을 축하하면서 원시인들이 궁극적으로 기원한 것은 행복이다. 그들은 죽은 사람들 혹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인간의 추수와 행복을 관장한다고 믿고, 마술적 힘에 의존해 다산과 풍요를 빌며 인생의 재앙을 물리치려 하였다. 그 마술적 힘을 얻기 위해 원시인들이 사용한 의례적 수단은 마스크와 변장이었다. 그들은 '뒤집은' 모습으로 의례적인 춤을 추며 저승의 혼령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카니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뒤집기 관행은 이런 원시적 관행에서 비롯되었다.

두 개의 귀 모양의 후드가 달린 옷을 입고 광인의 지팡이를 든 광인은 축제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광인의 축제에서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곧 광인이 되고, 그 광인은 순진함과 천진난만함 그 자체를 표현한다. 오늘날과는 광인의 의미가 사뭇 다르다. 아이들과 사회의 약자, 장애인을 위한 날로 시작된 광인의 축제는 전 유럽에 넓게 확산되어 있었다.

민중들은 우스꽝스럽고 해학적인 과장과 변형을 통해 그들이 느끼는 모든 공포를 극복하였다. 이 공포에는 자연과 신화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라 도덕적 금기, 인간과 신의 권력에 대한 공포까지도 포함되었다. 민중은 해학과 풍자를 통해 현실적 공포인 권력을 마음껏 조롱하고 비웃을 수 있었고 또 그것을 통해 짧은 순간이지만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느꼈다.

처음에는 이교적 축제라며 억압하던 교회가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이교적 축제를 기독교화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마스크와 변장, 뒤집기 관행을 특징으로 하는 겨울 축제들은 카니발 축제로 확립되기에 이르렀다. 카니발은 무질서하고 소란스러웠지만 일상에서 억눌린 인간의 욕망을 분출시키고 공동체의 화합을 다지며 젊은이들의 통과의례로서 기능하였다.

그러나 도시에서 카니발은 공동체를 화합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갈등과 대립을 드러내고 첨예화시키는 기능을 하였다. 더 나아가 카니발 전통은 정치적 혹은 종교적 분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지배집단은 카니발을 차용해 권력을 과시하였고 피지배집단 역시 카니발의 풍자와 해학을 빌려 권력을 조롱하였다.

근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카니발은 비생산적이고 소비적인 방탕 혹은 타락으로 비난받으며 점점 쇠퇴하였다. 하지만 카니발은 19세기 후반 다시 활기를 띠었고, 오늘날은 상품화되긴 했지만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우리의 축제도 유럽과 그 기원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래된 우리 축제의 전통을 되살리고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자긍심을 갖게 하고 공동체의 통합을 돕는 축제가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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