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 삶 다시보라는 내면의 알림…나에게 실수할 권리를 許하노라
인생에서 실패는 고통스럽다. 하지만 일상의 실수는 가볍게 넘어갈 수 있으면서도 반성의 기회가 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작은 실수들은 되레 주변 사람들에게도 웃음을 선사할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긍정의 각성제가 된다. 실수를 하고 나면 '아이고! 정신 차려야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치권이나 연예계 등에서도 실수성 해프닝은 사람 냄새를 느끼게 해 일반 국민이나 팬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효과를 얻기도 한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악의만 없다면 작은 실수는 무미건조한 삶에 청량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경쟁과 효율이 강조되는 요즘, 실수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기도 하다. 작은 실수를 용납하고 이를 놓고 함께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관용과 여유로운 사회가 비효율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입꼬리가 절로 위로 올라가게 하는 실수담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1. 술 취해 택시 탈 때, 구두 벗고
김해국(가명'51'회사원) 씨는 애주가다. 그는 어느 날 점심시간 동료 직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업무 관련 얘기를 하다가 논쟁이 벌어졌다. 오가는 이야기 속에 낮술이 시작됐다. 술을 저녁시간까지 이어졌다. 얼굴이 불콰해질 정도로 취기가 올랐다. 그러고도 소주 몇 잔을 더 마셨다. 후배들이 "일찍 귀가하시라"고 하자, 주섬주섬 윗도리를 챙기고, 택시를 타러 나갔다. 이때부터 '앗! 나의 실수'가 시작됐다. 만취한 김 씨는 빈 택시가 자신의 앞에 정차하자, 구두를 벗고 택시에 올랐다. 택시 문을 집의 현관문으로 착각한 것이다.
양말만 신고 택시를 탄 그는 집에 도착했고, 다음날 아침 구두가 없는 사실을 알게 된 부인은 그를 타박했다. "정신을 어디 놓고 사느냐? 그게 얼마짜리 구두인데…." 김 씨는 작취미성(昨醉未醒) 상태에서 부인의 타박을 귓등으로 듣고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어제 택시에서 내린 자리에 구두 한 켤레가 떡 하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앗! 내 구두!'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어제의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끊긴 필름'을 되찾은 느낌이다. 김 씨는 어젯밤 자신이 저지른 행적을 유추하고 난 뒤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일주일쯤 지난 뒤 직장 동료에게 자신의 실수담을 들려줬다. 이 얘기를 들은 동료들은 평소 술을 사랑하는 그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배꼽을 잡았다.
#2. 첫 필드 골프, 9홀만 돌고 짐 싸
이규영(가명'45'회사원) 씨는 구력은 10년에 가깝지만 아직 초보다. 동네 실내연습장에서 2개월 정도 골프 교습을 받은 뒤 필드는 물론 스크린 골프장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금요일 저녁 친한 학교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골프 할 줄 알지? 내일 아침에 특별한 일 없으면 나랑 골프 치러 가자." 소극적이고 점잔을 잘 빼는 성격인 이 씨는 "아직 필드에 나갈 실력이 아니다. 일행들에게 민폐 끼치기 싫다"고 했다. 하지만 선배의 강권으로 그는 다음 날 아침 난생처음으로 골프장에 갔다. 군부대 골프장이었다.
이 씨는 "이 골프장은 9홀짜리로 부담 없이 치면 된다"며 긴장을 풀어주려는 선배와 첫 대면한 다른 일행의 자상함에 고마움을 느꼈다. 게임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부족한 실력을 부지런함으로 보충했다. 남들 걸을 때 뛰어다녔고, 풀숲에 들어간 공은 아예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힘겹게 한 홀, 한 홀을 넘어갔다. 마침내 9홀이 끝났고, 일행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9홀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쳤다는 뿌듯함에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라커룸으로 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혼자 짐을 싸서 골프장을 떠나려 했다. 그때, 일행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규영아, 어디 있노?" 그는 당당하게 답했다. "도대체 어디 있었어요? 9홀 끝났으니, 이제 집에 가려고요."
골프가 18홀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9홀짜리 골프장이어서 9홀만 돌고 가는 줄로 착각한 그는 골프백을 들고 나와 다시 후반 9홀을 돌았다. 그때부터 그에겐 '어이! 나인(9)홀'이란 별명이 생겼다.
#3. 누가 내 차에 '미터기'(요금기) 달았나?
신입사원 장승필(28) 씨는 회사 선배들이 만들어 준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셨다. 정신없이 마시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 2시. 집이 경산이 장 씨는 귀소본능을 발휘해 곧바로 '1544-OOOO'으로 전화해 대리운전기사를 불렀다. 하지만 대리운전기사는 제때 오지 않았고, 동기들은 장 씨를 택시에 태웠다. 그 후엔 곧바로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자, 해프닝이 발생했다. 택시기사가 온몸을 흔들어서 깨우자 장 씨는 두 눈을 부릅뜨고, 차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누가 내 차에 미터기 달아놨노?"라며 노발대발했다. "아저씨, 대리운전기사를 불렀는데 누가 미터기를 내 차에 달아놨네요?"라고 묻자 어이가 없어진 택시기사 왈, "택시인데요. 요금은 2만7천원입니다."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차에서 내려 택시인 것을 확인하고, 지갑을 꺼내 요금을 지불한 뒤 고개를 좌우로 갸웃갸웃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날까지 어떻게 된 일인지 진상파악이 안 된 그는 동기들의 얘기를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그날 택시기사와 나눴던 '누가 내 차에 미터기 달아놨나?' 얘기를 들려줬다.
#4. 한 짝은 구두, 한 짝은 운동화
평소 지각을 밥 먹듯 하는 회사원 이상권(39) 씨. 그는 잦은 지각으로 상사의 눈총을 받던 터라 올해 초부터는 지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아침, 늦게 일어난 탓에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그는 출근 데드라인 2분 전에 회사에 도착했고, 엘리베이터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좋지 않은 낌새가 느껴졌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여성이 자신의 아래를 보며 입 주변을 가리고 웃는 것이었다. '뭐지? 누가 방귀를 뀌었나?' 그게 아니었다. 문제는 신발이었다. 한 짝은 검은 구두였고, 한 짝은 검은 운동화였다. 이 씨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자신의 자리로 가서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이날 퇴근 전까지 계속 슬리퍼만 신고 다녀야 했다. 점심을 먹으려고 건물 밖으로 나갈 때도 슬리퍼, 고객을 만나러 커피숍에 내려갈 때도 슬리퍼 차림이었다. 퇴근할 때도 다른 사람들이 안 볼 때 조심스레 회사를 빠져나갔다. 이를 눈치 챈 이 씨의 상사는 "아니! 구두랑 운동화가 색깔도 같고 디자인도 비슷해 멀리서 보면 잘 모르겠다. 그럴 만하네!"라며 웃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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