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까치네는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12-05-14 17:13:05

소란스럽다. 창밖을 보니 전봇대 위에서 심상찮은 싸움이 벌어졌다. 까치네 집에서다. 간밤에 일어난 누전사고의 원인이 까치네 때문이라는 전력회사 직원의 언성은 높았다. 누전으로 밤새 민원이 쏟아져 할 수 없이 집을 허물겠다는 회사 측 주장은 강경하다. 막 알에서 깬 새끼들도 있고, 당장 갈 보금자리도 없으니 새로운 둥지를 마련할 때까지 조금만 더 눈감아 달라고 애원하는 까치네의 사정은 절박했다.

강자와 약자는 가려지는 법이다. 강한 자는 철거를 감행했다. 까치부부가 들며 날며 바지런히 물어 나른 잔가지의 아늑한 둥지는 강자의 힘에 의해 무참히 허물어졌다. 전봇대 아래로 소복이 떨어진 잔가지 위를 한참이나 빙빙 돌던 까치네 가족은 산그늘이 길게 드리울 무렵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짙은 어둠이 골목 안으로 내려앉았다. 까치네 가족은 어디서 밤을 보낼까. 쉬이 잊을 법도 한데 잠자리에 누우니 가슴 한구석이 자꾸 까치네로 가서 머문다.

지난 십육년 새, 열 번이나 이사를 했다. 무명작가, 가난한 목사의 길을 선택한 후, 한 번도 내 삶을 후회해 본 적이 없었다. 한 가지 서러움이 있었다면 언제 둥지를 옮겨야 할 지 모르는 불안한 무주택자의 삶이었으리라. 우리나라의 주택 보급률은 2002년부터 100%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무주택자의 비율은 50%에 달한다. 하늘 아래 보이는 것은 온통 집이다. '집'은 넘쳐나는데 '살 집'은 없다는 것, 이 기묘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태초에 땅이 생겼을 때 주인은 누구였을까. 하늘과 땅을 이부자리 삼아 살아가고 있었던 풀, 물, 바람, 햇살, 새, 동물들이 원래의 주인이 아니었을까. 이제 그들을 몰아내고 인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어떤 생명이든지 이 땅에 태어난 것만으로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것이 인간이지 새든지 적어도 편히 누울 수 있는 제 몫의 땅덩이는 허락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늘에 티끌처럼 날아다니는 벌레 한 마리도 존귀한 생명체다. 공중의 새와 들의 풀꽃 하나에도 신성이 담겨있고, 시궁창에 있는 작은 미물에도 신의 지문이 묻어 있다. 이 땅에 인간이 함부로 취급해야 할 만큼 무가치한 존재는 없다. 이 모든 것이 함께 더불어 살기에 가치 있는 것이다. 어떤 생명도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아무리 강한 자라도 혼자서 행복할 순 없다. 약한 자의 약함은 강한 자가 채워야 할 몫이다. 그렇다. 너 없이 나도 존재할 수 없다.

까치네는 어디로 갔을까. 밖이 또 다시 요란하다. 까치 한 쌍이 힘차게 날개 짓을 한다. 둥지를 틀려나. 잔가지를 열심히 물어 나르고 있다. 부지런한 날갯짓 속에 또 있을 이별이 아른거려 마음 한구석이 쉬이 반갑지가 않다. 까치들에게 부탁한다. 누전 사태로 인해 거리로 내 몰리지 않도록 제발 전깃줄만은 피해서 둥지를 틀기를.

이상렬 수필가'목사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