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관(淸官)의 해악이 탐관(貪官)보다 더 크다." 이 파격적인 역설을 내던진 사람은 중국 명나라 말기의 혁신 사상가인 이탁오(李卓吾)이다. '청관'이란 청렴 강직한 관리요, '탐관'이란 그야말로 탐관오리를 이르는 말인데, 이 무슨 모순인가?
이탁오는 더구나 가장 큰 해악을 미치는 청관으로 '성현의 도(道)로 마음을 도륙하는 자'를 지목했으며, 그들이 미치는 해악은 후대에까지 파급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예로 성리학을 집대성한 송나라의 유학자 주자(朱子)를 들었다.
이는 주자를 비판했다기보다는 후대의 성리학이 하나의 도그마로 굳어지면서 명분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인간 본성의 자유로운 발현을 가로막은 것을 지적한 것이다. 즉 공자를 절대화한 유학의 교조주의를 비난한 것이었다.
이탁오는 그래서 "소인이 나랏일을 그르치면 구제할 수 있지만, 군자가 나라를 그르치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설파했다. 왜냐하면 '군자라 자신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다고 여겨 담(膽)이 커지고 의지가 굳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뇌물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청백리(淸白吏)가 죄인의 목숨을 끊는 일은 조금도 꺼려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도덕적 자신감이 인간성을 마비시키는 경우를 지목한 것이다.
지금 이 땅에는 MB 정권의 실세로 불려왔던 왕차관이 구속되는 등 소위 대통령 임기 말 권력형 비리가 여지없이 불거지고 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이 같은 보수 세력의 부정부패에 대해 가장 선명한 비판의 날을 세워야 할 진보 정당이 선거 부정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것이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백화점식 부정선거의 진상이 당 자체 조사에서 밝혀지면서 진보 진영 내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그러나 부정의 당사자인 당권파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진보 진영의 상식' '동료에 대한 예의' 운운하며 지도부와 비례대표의 사퇴를 권고하는 당의 방침조차 무시하고 있다. 과거 민주화운동 경력이 언제까지나 자신들의 도덕성을 담보해 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일까.
진보당의 전신인 민노당 창당에 참여했던 한 주요 인물의 말은 명나라 사상가 이탁오의 논리와 더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사고방식은 흑백논리이다. 자신들은 선(善)하니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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