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왕국 대가야 관광왕국으로
고령은 대가야 왕국의 도읍이었다. 가야국 중 최고로 번성했고 가장 마지막까지 국가를 이어갔다. 562년 신라에 무릎을 꿇으며 나머지 가야국과 함께 역사 속으로 '순장'(殉葬)된 대가야. 1970년대 발굴과 함께 1천500년의 세월을 거슬러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대가야는 고령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고령군은 이제 낙동강을 또 하나의 지역 관광자원으로 추가하고자 한다. 새 단장한 낙동강 친수공간을 통해 역사 문화가 숨 쉬는 고령의 미래 모습을 그려나가고 있다.
◆다시 울리는 가야금 선율
고령을 서울로 한 대가야는 10여 개 가야국 중 가장 번성했으며 마지막까지 왕국을 유지했다. 우곡면 객기리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회천을 따라 15㎞ 북으로 가면 왕궁이 있던 고령읍이 나온다. 이곳을 중심으로 이진아시왕(42년)에서 도설지왕까지 500년 넘게 이어온 대가야. 그 전성기는 5세기 무렵이다. 핵심 성장동력은 철이었다. 철을 다루는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무기와 농기구를 생산했다. 철은 무겁기 때문에 주로 물길을 통해 교역이 이뤄졌다. 479년 중국 남제(南齊)에 사신을 보내 작호(爵號)를 받는 등 외교력도 발휘했다.
554년 대가야'백제 연합군은 관산성(충북 옥천군) 전투에서 신라군에 크게 진다. 그후 쇠락은 가속화했다. 결국 562년 신라군의 공격을 받고 역사의 마침표를 찍었다.
대가야는 역사 속에 묻혔지만 가야금은 오늘날까지 선율로 살아있다. 500년대 초 신라와의 혼인동맹 실패와 내부 분열로 대가야의 국력은 약해졌다. 가실왕은 흩어진 가야국들을 음악으로 모으기 위해 우륵에게 가야금을 만들고 12곡을 짓게 했다. 가실왕은 대가야 부흥의 꿈을 가야금 선율에 실었다. 그 자취가 우륵박물관(고령읍 쾌빈리)에 남아있다. 박연, 왕산악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꼽히는 우륵은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가야금을 연주했다.
대가야역사관(고령읍 지산리)에선 잃어버린 왕국 대가야의 모습을 다시 만날 수 있다. 대가야를 중심으로 제철 유적 등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바로 옆 대가야왕릉전시관에는 국내 최초로 발굴된 대규모 순장(껴묻거리) 무덤인 지산동고분군 제44호분의 내부를 재현해 놓았다.
정동락 대가야박물관 학예사는 "낙동강은 외부의 침입을 막아주는 자연 장벽인 동시에 교류의 통로였다"며 "강과 함께 성장한 대가야의 역사유적만으로도 고령은 문화관광지로서의 발전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강과 함께한 역사문화
고령은 암각화(바위그림)의 고장이다. 강가에 살던 선사시대 사람들은 바위를 쪼아 그림을 남겼다. 주로 동심원과 가면 모양을 새겼다. 암각화는 태양을 숭배하고 집단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한 선사시대 원시신앙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곳이 개진면 양전리의 암각화다. 대가천과 안림천이 합쳐 회천이 시작되는 곳이다. 둑이 생기기 전에는 암각화 앞까지 강물이 흘러들어왔다. 이곳에서 상류 방향으로 약 3㎞ 떨어진 쌍림면 안화리 안림천 주변에도 비슷한 암각화가 있다.
고령은 나루의 고장이기도 하다. 개경포나루(개진면 개포리)는 낙동강 물류의 축을 담당했다. 개포나루였던 이곳은 '경'(經)이 더해져 개경포로 불린다. 팔만대장경과의 인연 때문이다. 몽골 침입 때 강화도에서 대장경을 배에 싣고 서해안과 김해를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승려들은 개경포에서 내린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해인사로 향했다.
조선시대 때 개경포는 소금과 곡식을 실은 배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물류를 저장하기 위해 나루 인근에는 창망(倉望)이라는 창고가 들어섰다. 30여 개의 주막에는 강태공과 상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루에는 보부상들이 몰려들었다. 나루를 통해 많은 물자들이 오가면서 조선의 대표 상단인 '고령상무사'가 생겼다. 1899년 설립된 고령상무사는 고령 기와와 고령 도자기, 해산물 등을 조선 전역으로 유통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8년 고령상무사기념관(고령읍 고아리)이 문을 열었다.
◆고령의 미래, 낙동강
낙동강은 고령의 미래다. 고령의 최대 성장잠재력은 낙동강에 있다. 주변 여건이 좋다. 고령 낙동강 구간은 55㎞로 낙동강 총 연장(513㎞)의 11%에 달한다. 지리적으로 국토 중앙에 위치하고 대도시와 가깝다는 이점을 안고 있다. 대구시 등 인접 도시의 인구가 약 300만 명이다. 그만큼 잠재적인 관광수요가 많다.
고령군은 '낙동강 고령프로젝트'를 세웠다. 낙동강 사업으로 새롭게 조성된 강변을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현재 낙동강 구간을 7개 지역으로 구분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다산면 노곡리'곽촌리의 노곡지구(131만2천㎡)에는 강정고령보를 중심으로 생태습지, 초화원, 조류전망대가 들어선다. 좌학지구(다산면 좌학리'72만2천㎡)에는 은행나무 군락을 정비해 오토캠핑장(1만6천500㎡)을 만든다. 낙동강교 인근 봉화산(성산면 강정리'676.5m)의 봉화대 복원 및 누각 재정비 계획을 세웠다.
고령군은 나루의 역사성을 살려 나루문화예술공원(다산면 평리리)을 추진하고 있다. 2천500억원을 들여 2016년까지 완공할 예정인 나루공원(200만㎡)에 악극뮤지컬 공연장, 수변문화갤러리, 예술인 마을 등을 선보인다.
최용석 고령군 낙동강희망추진단장은 "개경포 나루와 더불어 옛 주막을 복원함으로써 쉬면서 숙박할 수 있는 수변관광지로 만들 것"이라며 "나루공원은 낙동강변 관광레저의 거점 역할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규호 경주대 관광레저학과 교수는 "지역의 독자성을 띤 문화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야라는 문화적 동질성을 고려해 성주 등 다른 지자체와 함께 광역으로 가야 관광권을 묶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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