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오키나와

입력 2012-04-30 11:01:20

지난 27일, 미국과 일본이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 기지 재편 문제를 공동 문서로 발표했다. 1만 9천 명의 해병대 병력 가운데 9천 명을 하와이와 괌, 호주 등지로 이전하고, 오키나와 중남부의 미군 시설과 구역을 3단계로 나눠 일본에 반환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난 1995년 미군 3명의 여중생 성폭행 사건으로 불붙은 오키나와에서의 미군 철수 문제가 17년 만에 구체적인 성과를 거둔 셈이다.

오키나와의 역사는 힘없는 나라의 전형이다. 류큐(琉球)라는 독립국이었던 오키나와는 17세기 초 일본에 점령당했다. 메이지 유신 때는 아예 이름도 오키나와로 바뀌었고, 태평양 전쟁 때인 1945년 4월부터 3개월 동안 20여만 명의 희생자가 난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일본은 미군의 본토 상륙을 막기 위해 옥쇄 작전을 펼쳤는데, 희생자의 50%에 가까운 9만 4천여 명이 지역 주민이었고,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도 있었다.

이 때문에 오키나와에서는 본토를 보호하려고 오키나와를 희생시켰다는 반일 분위기가 높았다. 미국도 앞선 이오지마(硫黃島) 전투에 이은 오키나와에서의 결사 항전에 놀라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오키나와는 최악의 전쟁터였다. 그 뒤 오키나와는 미 군정 지배를 받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됐지만, 극동 지역 평화 수호를 명분으로 미군이 주둔해 오늘에 이른다.

최근 주한 미국 대사관의 초청으로 일본 내 미군기지를 방문했다. 일본 본토 요코스카 해군기지에서는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 호에 승선할 기회가 있었지만, 오키나와 방문이 초점이었다. 오키나와에는 해병대기지인 캠프 포스터를 비롯해 카데나 공군기지, 후텐마 해병 항공기지 등 일본 내 미군기지의 75%가 밀집해 있다. 미국 본토를 제외한 해외 최대 규모다. 오키나와에서는 일본과 북한, 중국 연안까지 2시간 이내에 비행기 출격이 가능하고, 일본 본토와 대만, 필리핀을 연결해 최근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는 결정적인 고리 역할을 한다.

오키나와의 현재는 지정학적 위치가 많은 영향을 미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제국주의가 있다. 류큐 왕국이 후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라진 것처럼 과거나 현재나 힘이 없는 국가는 설 땅이 없다는 것이 오키나와를 방문한 소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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