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야구계 안팎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팀은 삼성 라이온즈였다. 4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이란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해 삼성은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진기한 일들을 쏟아냈다.
무시무시한 방망이 쇼를 펼치며 촉발한 '부정 배트 시비'는 그 서막에 불과했다. 정경배의 사상 첫 연타석 만루 홈런, 이승엽의 최연소 MVP 등극, 양준혁'최익성의 20-20 클럽 가입은 야구 명가 삼성의 힘을 보여준 장면이 됐지만 포수 김영진의 스트라이크 낫아웃 사건은 그해 삼성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됐다.
공교롭게도 일련의 일들은 백인천 감독과 연결돼 화제를 남겼다. 1996년 4강을 호언장담하며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실패한 삼성의 지휘봉을 넘겨받은 백 감독은 그해 팀 창단 최악의 성적표(6위)를 받아들었다. 백 감독은 대구 출신 고참 선수들과의 관계가 껄끄러웠고 결국 강력한 세대교체 카드를 빼내 들었다. 시즌 후 고참 김성래'이종두'강기웅 등을 정리한 백 감독은 이듬해 혹독한 훈련으로 1997년을 준비했다. 김성래와 이종두는 쌍방울로 팀을 옮겼고, 강기웅은 현대로의 트레이드에 옷을 벗어버렸다. 순혈주의'전통을 우선했던 팬들은 거부감을 표했지만, 백 감독은 이에 굴하지 않고 체질개선을 명분으로 체제 개편을 밀어붙였다.
이에 따라 '김용국(1994년 태평양 이적)-유중일-강기웅-김성래'의 최강 내야라인은 '김한수-김태균-정경배-이승엽'이 이어받게 됐고 외야도 신동주'최익성 등 젊은 피가 중용됐다.
정경배는 1997년 5월 4일 대구 LG전서 만루에서 두 번이나 펜스 너머로 공을 넘기며 해태 김봉연 등이 보유했던 한 경기 개인 최다 타점(7개) 기록을 경신했다. 이날 27명의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인 삼성은 선발 전원 안타와 전원득점 등으로 역대 팀 최다득점(27점), 팀 최다타점(26점), 팀 최다루타(58루타), 최다 점수 차 경기(22점) 기록을 모두 경신했고 팀 최다홈런(9개)기록도 동률을 이루는 등 각종 진기록을 쏟아냈다.
백 감독이 직접 미국에서 공수한 방망이로 대폭발을 이뤄냈지만, 이날 삼성의 가공할 공격력은 부정 배트시비 사건에 휘말리는 발단이 됐다.
이 일로 제자뻘인 LG 천보성 감독과 얼굴을 붉힌 백 감독은 6월 22일 대구 LG전에서 꾹꾹 눌러놨던 폭탄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날 9회초 LG 공격 때 삼성 벤치에서 낸 사인을 LG 3루 코치 조 알바레즈가 빈볼 지시라며 삼성 더그아웃에 대고 영어로 거친 말을 해댔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백 감독이 아니었다. 그라운드로 뛰쳐나간 백 감독은 알바레즈 코치와 멱살잡이를 하는 등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둘은 곧바로 퇴장당했고, 5경기 출전정지의 제재를 받았다.
징계 중이던 백 감독은 6월 27일 대구 한화전에서 9회말 한화 포수 강인권의 유례없는 끝내기 타격방해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는 것을 보고 귀가했지만 뇌출혈을 일으키며 벤치 대신 병상을 지키게 됐다. 한 달여 치료 끝에 8월 1일 부산 롯데전서 감독직에 복귀한 백 감독은 8월 23일 대구 쌍방울 전에서 프로야구사 최대의 해프닝에 휩싸이고 말았다.
더블헤더 1차전, 4대1로 앞선 삼성은 9회초 마지막 수비에 들어갔다. 2사 1, 2루 볼 카운트는 2-1. 타자 장재중은 김태한의 바운드된 볼에 배트를 헛돌렸고 포수 김영진은 타자를 태그하지 않은 채 공을 팬 서비스용으로 관중석에 던져버렸다. 그 후 경기종료가 선언되고, 심판들이 심판실로 향할 찰나, 쌍방울 김성근 감독이 더그아웃을 뛰어나와 심판을 막아서며 거칠게 항의했다. 결국 4심 합의 끝에 어필은 받아졌고 야구규칙에 따라 2루 주자 김성래는 홈을 밟았고, 타자는 2루로 진루하게 됐다. 4대2로 한 점을 쫓긴 2사 2, 3루에서 라커룸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김태한은 아웃카운트 한 개 잡지 못하고 두들겨 맞았고 점수는 4대6으로 뒤집혔다. 당시 매니저였던 이성근 운영팀장은 "포수의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공교롭게도 그 후 리드를 지키지 못해 지고 말았다. 다 잡은 경기를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날린 백 감독의 속은 쓰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뜻대로 풀려주지 않던 경기에 스트레스를 받아온 백 감독은 9월 3일 잠실 LG 더블헤더 1차전 후 삼성 유니폼을 벗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그날 백 감독은 4대4 동점이던 7회 1사 2, 3루에서 구원 등판한 전병호에게 LG 4번 타자 심재학을 거르라는 사인을 냈지만 전병호는 정면 승부를 택했고, 3점 홈런을 맞아 팀이 패했다. 백 감독은 강판당한 전병호를 나무랐고 "던지라는 대로 던졌다"는 전병호의 항명에 체벌을 가했다.
"건강을 위해 당분간 요양 하겠다"며 백 감독은 돌연 귀가했고, 삼성은 더블헤더 2차전을 조창수 수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올려 치러야 했다. 구단은 "백 감독이 시즌 막판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아 뇌졸중이 악화할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지만, 더그아웃에서의 체벌에 대한 문책성 조치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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