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착한 자본주의와 나쁜 자본주의

입력 2012-04-06 10:43:16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이 작성했다는 '종교 질문' 24가지가 최근 회자됐다. 지난해 포천(Fortune)이 선정한 세계 22위의 거대 기업군(群) 삼성이 그의 손에서 일궈졌다는 점을 상기하면 생전에 궁금해했던 질문들이 소박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중 이른바 '부자 이병철'도 '부자는 악인인지 아닌지'를 고민했다는 대목은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과문한 탓에 필자는 이 회장의 물음표에 답안을 작성해 제시할 능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다만 입소문으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차동엽 신부의 책 '잊혀진 질문'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앞서 밀리언셀러가 된 자기 계발서 '무지개 원리'의 저자인 차 신부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답한다.

"요컨대 부는 악이 아닙니다. 선을 행할 기회입니다. 나쁜 것은 그 기회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거부하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 대기업 2, 3세 총수와 그 일가, 소위 '부자들'에게 시련의 계절이 돌아왔다. 국내에서는 '빵집 논쟁'에서 촉발돼 '골목 경제'를 몰락시킨 주범으로 몰리는데다 지난해에 이어 연초부터 '회장님들'의 범죄 혐의가 또다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재벌 개혁'이 단골 메뉴로 등장한 상태기 때문이다. 선거철이 되면 등장하는 '포퓰리즘 공약' 정도로만 치부하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국민들도 의아하다. 지난 4년간 대통령이 앞장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쳤고 우리나라 경제는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열었다는데 돌아오는 것은 '양극화'라는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현실은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며, 은퇴하고 그나마 편안한 노후를 누려야 할 '어르신들'이 이들을 대신해 질 나쁜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가계 빚이 국가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재깍거린 지는 이미 오래전 이고 고사 직전인 중소기업은 여전히 '단가 후려치기'부터 개선해 달라는 해묵은 말에 목이 멘다.

지난 1월 말 스위스 다보스(Davos)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World Economic Forum)은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뜨거운 논의와 반성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보다 앞서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점령하라'(OCCUPY) 캠페인은 1%에 희생당한 99%에 의한 대중적 '경제 민주화' 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이 같은 점령 시위는 반(反)금융권 진영에 돌풍을 몰고 왔을 뿐만 아니라 법원, 상가, 대형마트 등 미국 사회 곳곳에서 기득권 세력에 대한 '건기의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제 이들의 열정은 '자본'과 '기업'에 대한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에 머물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부와 권력의 불평등 해소, 인본주의적 성장 모델 개발, 개도국 및 후진국과 공생하는 '착한' 세계경제로의 '진화'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다보스포럼'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회장은 이번 포럼에서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토로하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지 않는 자본주의 체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올해 포럼은 '대전환:새로운 모델의 형성'이라는 대주제 아래 시종일관 서구 자본주의의 위기를 걱정하는 자리였다고 참석자들은 전하고 있다.

반세기 전에 미국 사회학자 대니얼 벨(Daniel Bell)은 '이데올로기의 종언'(The End of Ideology)을 인류에게 예언했다. 그는 같은 이름의 저서에서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는 더 이상 없다고 단언했다. 벨의 목소리는 일찌감치 확신에 차 있었다.

"이제 유토피아라는 청사진을 믿을 사람은 없다. 오늘날 새로운 의견 일치가 지식인들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다. 복지국가를 용인하고, 권력 분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며, 혼합 경제 체제를 인정하는 다원론이 그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이 났다."

세월이 지나 새삼 읽는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이제 '자본주의의 종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할 시대에 다다랐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김아미/봉산문화회관 공연기획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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