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 이곳서 목숨보전 조선시대엔 어태 봉안, 박前대통령 자주 방문 사명각
직지사는 신라, 고려, 조선 그리고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왕실 등 권력자들과 밀접한 인연을 갖고 있다. 이는 사찰의 흥망성쇠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먼저 직지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은 신라 눌지왕 성국 공주의 병을 고쳐준 인연으로 포교를 공인받았다. 이로써 도리사와 함께 직지사를 세울 수 있었던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경순왕이 고려'후백제의 틈바구니에서 쇠잔해져 가는 국운을 다시 일으키고자 금자대장경을 만들어 이곳에 보관한 것도 신라왕실과 직지사의 특수한 관계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직지사의 사운을 결정하는 역사적인 사건은 능여대사와 왕건의 인연이다. 927년 견훤에게 대패한 왕건이 직지사의 도움으로 퇴로를 열어 개경으로 무사히 귀환한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한 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토지 1천 결을 하사한다. 이후 고려왕실의 적극적인 후원은 대찰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전국의 사찰이 극도의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직지사는 2대 정종의 어태를 대웅전 뒷산 북봉에 안치함으로써 태실 수호사찰로 배불(排佛)의 칼날에서 비켜나 사세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임란 중에 대부분의 전각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선조의 신임을 받았던 호국선사 사명당이 출가한 사찰이라는 이유로 왕실의 지원 속에 신속한 중창이 이루어진다.
직지사와 권력자의 특별한 관계는 근'현대에 들어서도 이어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구미 출신으로 어릴 때 이곳을 자주 찾은 인연으로 재임 기간 중 수차례 이곳을 방문했다. 이런 인연으로 크고 작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녹원 스님과의 각별한 친분은 널리 알려져 있다. 명부전에 박 전 대통령 내외와 양친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사명각 현판도 박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아울러 직지사 최대 규모의 건물인 만덕전(萬德殿)도 불교신도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 내외의 관심 속에 탄생된 건물로 알려져 있다. 편액은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의 법명 만덕(萬德)을 따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박용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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