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곰~집

입력 2012-03-30 07:50:43

꽃 피는 봄, 사냥꾼은 곰이 지나는 길목에 돌을 하나씩 갖다 놓는다. 호기심 많은 곰이 매일 돌을 주워 굴속에 모은다. 돌이 가득 차서 들어갈 수 없으면 바깥에 나와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사냥꾼은 곰 잡기가 쉬워진다. '곰~집 된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어릴 적엔 학교에서 나눠주는 강냉이 빵이 무척 구수했다. 서로 먹으려고 했다. 추운 날 아침에는 아버지께서 속이 거북하다시며 김치 넣고 물 붓고 수제비도 뜯어 넣고, 멸치도 듬뿍 넣은 밥국을 끓이라 하셨다. 큰 바케스(buckett)에서 푸욱 끓으면, '구루마꾼' 아저씨들을 불러 나눠 먹었다.

엄마는 '나는 그런 거 못 먹는다' '니 오기 전에 마이 무따' '니나 얼렁 무라'했고 모처럼 집에 오신 할아버지는 청요리 상을 받고 '입맛 없다'하시며 손자 몫을 고스란히 남겨 주셨다. 의과대학 시절 봉사활동 나가면 비타민, 철분제 나눠 주는 게 일이었다.

이렇듯 우리는 가난했고 전 국민이 날씬했다. 한데 지금은 지방과 전 국민이 전쟁 중이다. 비누칠 하는 얼굴만이 미모이다가 몸이 무기이고 용모가 되었다. 몸짱 되고 싶은 여성들이 옷 입어보다 비명 지르는 건 다 못된(?) 지방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나도 확실하게 너무 살쪄 버렸다. 비만은 질병으로 분류된다. 지방아 넌 억울해도 할 수 없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수술이 35년 전에 있었다. 프랑스 일후즈(ILLOUS) 박사의 병원으로 이탈리아에서 전화가 왔다. '봉쥴, ….' 내용은 산모, 애기 낳고 배 지방 쏙 빨아내서 날씬하게 못하느냐?

며칠 후 대답은 '위'(OUI'예스). 박사는 전화에서 힌트를 얻어 못된(?) 지방을 진공으로 뽑아내기로 하고, 혈관과 신경을 젖혀가며, 출혈 없이 지방흡입하는 튜브 등 새로운 기구들을 고안했다. 심플하지만 천재적인 일들이었다. 그 뒤로 수많은 진보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첨단장비나 기구도 내 몸을 무리하게 이길 수는 없고, 이렇게 안전한 시술도 쉽게 생각하고 함부로 과하게 하면 큰일 생길 수 있다. 인간의 몸을 존중하고 아끼는 감성을 보탤 때 궁극의 검객 칼맛이 나온다.

천리마란 건 없다. 천리마 한 걸음이 조랑말 열 걸음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 차가 아무리 좋아도 과속 운전, 난폭운전이 안전할 수가 없다. 명필은 한 획이라 했고, 획은 깊이 사색하고 통찰한 후 돈독히 그어야 한다. 아무나 칼 들고 김밥 썰며 원조라 써 붙여도 하루아침에 전문가가 되진 못한다. 스스로 전문가라 부르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 같은 것이다. 지적 깨달음과 눈물의 임상수련이 있어야 칼맛 나는 감성검객이 된다.

어쨌든, 봄 속으로 뛰어들어 곰 잡으러 갑시다. 곰을 잡으러 갑시다. 곰을 잡아 괴롭히지는 말고 곰~집 돌려줍시다. 과체중은 더 이상 세상을 사로잡을 만한 게 아니다.

이경호(성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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