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64곳의 검찰 청사엔 검찰 정신을 일깨워주는 검찰기(旗)가 나부낀다. 거기엔 다섯 개의 막대가 그려져 있다. 한가운데 막대는 조금 길고 아래위가 뾰족한 칼 모양이다. 그 좌우에 조금 작은 막대가 두 개씩 있다. 검찰은 이 막대를 '올곧은' 대나무에 비유한다. 검찰은 다섯 개 막대가 왼쪽부터 공정 진실 정의 인권 청렴을 상징한다고 했다.
한가운데 막대는 정의의 칼인 셈이다. 검찰이 정의에 가장 큰 무게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곧은 막대의 병렬 배치는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의 이미지를 담았다고 한다. 올곧은 대나무를 상징하는 막대를 다섯이나 내세운 정부 기관은 아마 검찰이 유일하지 않을까. 대나무처럼 올곧겠다는 남다른 각오를 담았으리라. 옛 선비들이 꼿꼿함과 절개를 닮으려 대나무를 좋아했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 검찰 모습도 과연 그럴까. 아니다. 각종 의혹에 대한 부실 축소 수사로 화를 자초했다. 정의보단 불신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증언(자서전)에서 검찰에 대한 불신의 단면을 본다. "이 나라의 최대 암적 존재는 검찰이었다. 권력에 굴종하다가 약해지면 물어뜯었다. 나라가 검찰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러웠다." 최근엔 수사권 조정을 둘러싸고 경찰과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했다. '밀양 사건' '나경원 의원 사건' 등으로 경찰과의 갈등은 진행형이다. 국민이 좋게 볼 리 없다.
마침 이럴 즈음 검찰이 '칼'을 빼 들었다. 일파만파인 불법 민간인 사찰 의혹 재수사를 위해서다. 한 전직 총리실 직원의 입막음을 위해 청와대 직원이 거액의 돈을 준 사실과 청와대 개입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6월 처음 사건이 불거졌을 때 수사한 이후 두 번째다. 당시 검찰은 사건을 시원스럽게 처리 못 했다. 꼬리 자르기식의 수사란 비판이 쏟아졌고 이제 명예 회복 여부의 기로에 서게 된 셈이다.
국민들은 펄럭이는 검찰 깃발에 새겨진 정의로운 검찰 정신을 보고 싶어 한다. 꼿꼿하고 쓰임새 있는 대나무 같은 검찰 정신을. 드물게 꽃을 피우지만 꽃필 땐 대나무밭 전체에 피고 모두 고사(枯死)한다는 대나무 특유의 성질을 가진 검찰 정신을 말이다. 다시 든 '정의의 칼'이 의혹의 몸통과 진실을 시원스럽게 밝혀 나부끼는 검찰 깃발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란다.
정인열 논설위원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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