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원색…베네수엘라의 강렬한 향기
그림 속의 꽃은 향기가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결코 시드는 법이 없고, 그림 속의 꽃에서는 꽃의 향기가 아닌, 때로는 꽃의 향기보다 진한 작가의 향기, 그리고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땅의 기운까지 느껴지곤 한다. 최근에 깨달은 꽃 그림의 가치이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꽃 그림 앞에 서면 화가 치밀던 때가 있었다.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몸살을 앓았던 대학 캠퍼스에서 미술을 배우던 청년 시절, 시대의 아픔을 외면한 듯한 꽃 그림전을 보며 분노했던 기억이 있다. 꽃 한 송이를 따뜻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바라볼 수 없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그로 인해 뒤틀려지고 희생되었던 미의식을 회복하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십수 년 전, 사십대 중반을 넘기고 나서야 꽃 그림이 눈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지난겨울, 서울의 한 화랑에서 처음 접한 크리스티나 누네스의 꽃(Flores) 연작을 인터불고갤러리의 봄 축제전(Spring Art Festival) 에서 다시 만난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출신의 크리스티나 누네스의 작품은 남미 특유의 강렬하면서도 화려한 색채로 우리의 눈을 자극한다. 빨강, 초록, 보라, 금빛 나는 노랑의 아크릴 원색들이 검은 윤곽선과 프레임 안에 갇혀 있고, 정방형의 프레임은 종과 횡으로 열을 맞춰 대형 화면을 구성한다. 원색의 강렬함이 자유분방하게 분출되어 나오기보다는 오히려 절제된 정형의 틀 속에 갇혀 있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화면 속에는 뜨거운 열기가 내재하며 에너지로 충만한 느낌을 준다.
라틴계의 화가로서 아시아의 문화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진 크리스티나는 중국과 한국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체류하며 작업해 왔다. 그래서일까? 그의 꽃 그림 속에서 전통적인 오방색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톤은 라틴 고유의 색감과 무게가 지배적이다. 크리스티나의 작품에서는 태평양 건너 남미 대륙의 정취가 묻어나고 있다. 그녀의 꽃에서 멀고 낯선 나라 베네수엘라의 강렬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오의석<대구가톨릭대 조형예술학부 교수
▶인터불고갤러리 봄의 축제전(Spring Art Festival)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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