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백일장] 말들의 풍경/어머님을 떠나보내며…/꽃샘/늦은 첫눈

입력 2012-03-09 07:45:43

♥수필 #1-말들의 풍경

세상이 각박해진 탓일까. 사람들의 말씨가 퍽 거칠어졌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부터 교복을 걸친 파릇한 학생들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참 쉽게도 말을 내뱉는 풍경을 본다. 공공장소에서 자기감정 하나를 다스리지 못해 욕을 하는 어른들도 문제지만, 멀쩡한 말을 아무렇게나 뭉뚱그린 외계어로만 소통하려는 아이들의 치기도 걱정스럽다. 어떻게든 남다른 신조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현대인의 강박과 위기의식이 읽히는 듯도 해서다. 말은 인격을 담는 그릇이라는데, 오염된 말의 범람은 우리 사회의 그늘진 초상이 아니겠는가.

물론 신조어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를 기분 좋게 해주는 말들이 대개 단순한 것이었음은, 한 번쯤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미안한 사람이 미안하다고 말할 때, 고마운 사람이 고맙다고 말할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살 만한 세상이라고 느낀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이런 말들은 이미 그 자체로 아리땁다. 단순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계산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심이 압축돼 있으므로 더 듣기 어려워진 말들. 나는 이 말들을 사랑한다. 이 말들이 있는 풍경은 그곳이 어디든 살 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단순한 말들은 혀끝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왠지 진지하게 꺼내볼라치면 쭈뼛쭈뼛 얼굴마저 달아오른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상대가 읽어주길 바라는, 속 깊은 행간과도 같은 깊숙한 말들. 그 말들의 아름다움과 따스함, 그리고 소중함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은 우리가 서로를 향해 겨누는 화살이나 총탄은 아닐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를 단정하게 오가며, 서로에게 아름다운 응원이 되어주는 말들의 풍경이 새삼 그리워지는 봄날이다.

이지후(대구 수성구 범어1동)

♥수필 #2-어머님을 떠나보내며…

어머님이 좋아하는 꽃 피는 봄이 왔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어머님의 동산에도 진달래꽃이 활짝 피겠지요. 이젠 휴대폰 너머로, 어머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이젠 더 이상 어머님의 전화는 오지 않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우리 곁을 떠나신 어머님.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의식불명이 되어버려 손과 얼굴을 만져도 어머님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잘해 드린 것이 없는데, 뒤늦게 후회하며 어머님 앞에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언제나 자식 걱정에 눈물이 마를 일 없었던 어머님. 그래도 전 언제나 호랑이같이 당당한 모습이 좋았어요. 표현은 없지만 속은 따뜻하고 정 있는, 무뚝뚝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분이라는 걸 왜 제가 모르겠어요. 어머님은 제겐 든든한 버팀목이셨어요. 미운 정 고운 정에 사연도 많았던 시간들이었지만 추억으로 가슴 한쪽에 묻어두고 살아가겠습니다. 사슬처럼 얽히고설킨 슬픔과 가슴 저림들, 서러움을 밀어버리기에는 상처가 너무 많지만 이제 모든 것들을 기억 속에서 다 지워버리겠습니다. 어머님을 산에 모시던 날, 예쁜 나비가 우리 곁을 찾아와 제 손에 한참을 앉았다 갔지요. 전 어머님의 영혼이라 생각했습니다. '잘 살아가라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제 곁에 잠시 머물다 날아갔지요. 부디 좋은 곳에 가시길 빌게요. 이제는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잠드세요. 살아생전 한 번도 못다 한 말 늦었지만 해봅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님의 큰 며느리 올립니다.

최은화(대구 서구 비산5동)

♥시 #1-꽃샘

겨울 가는 긴 꼬리가 가늘게 떨고 있다

푸성귀로 오는 저 봄의 길목에

한사코 바람은 주인 없이 불고

어서 오라 손꼽아 기다렸네

한 겹 두 겹 껴입는 마음

망설이는 설레임

옷을 벗은 겨울나무는

바람을 안고 산다

스쳐지나갈지라도 앙상한 가지 끝

물기 없는 잎새

아픈 몸짓 추슬러 세울 때마다

바람은 상처를 어우르고

빙점 저 아래로

강물이 흐른다.

지울 수 없는 삶의 의미로

민창기(영천시 대창면)

♥시 #2-늦은 첫눈

우수가 지나고서야

기어코 첫눈다운 첫눈이 내리는 것은

못다 한 그리움을

아니,

겨울 허리춤에 품었던

칼끝 바람이

사과의 말을

하려는 것이겠다

밤 깊어 가는데

소리 없이 아주 조용히

누구에게도 실례됨 없이

소.복.소.복

무거운 발걸음을 한다는 것은

마당 잔디에 미안했을까

그래,

미안할 때는

아무도 없을 때

밤하늘 별들도 눈치 채지 못할 때

바람도 자고 있을 때

슬며시 손을 잡는 것처럼

다녀가는 게지요

사랑도 이 밤

그렇게 다녀갔으면

김영석(청도군 이서면)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조정향(대구 중구 대봉1동)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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