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경남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대학은 부산에서 나온 PK 출신인데도 부산이 싫다. 정확히 말하면 부산이란 도시는 좋지만 몰지각한 일부 부산 사람들이 미운 나머지 도시마저 서먹해질 때가 많다. 남부권 신공항에 대한 그들의 아집 때문이다.
15년 전 대구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천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려 했을 때 부산은 극렬 반대했고 위천단지는 결국 무산됐다. 그래도 그때는 '식수원 오염'이란 생존이 걸린 사안이어서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는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신공항은 다르다. 그들이 주장하는 가덕도나, 영남권 4개 시도가 희망하는 밀양이나 부산에선 지척이다. 접근성을 놓고 볼 때 오히려 밀양이 더 가깝다.(취재 결과 출근 시간에 부산시청에서 동시에 출발했을 때 밀양 신공항 부지 도착 시간이 더 빨랐다.)
가덕도에 공항이 생기면 부산의 행정구역이라서 좋긴 하겠지만 밀양에 조성돼도 가장 이득을 보는 지역은 부산이다. 여기다 대구경북과 울산경남도 좋다. 그러면 어디에 국제공항을 만들어야 하는지 삼척동자도 가늠할 수 있는데 부산은 막무가내로 반대한다. 심지어 새누리당이 재집권 시 신공항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것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무조건 가덕도'만을 외친다. 이 때문에 부산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새누리당은 신공항을 중앙당 총선 공약에서 제외하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민주통합당의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문재인 후보는 아예 가덕도신공항을 공약했다.
대구경북이 이런 수를 뒀다면 아마 전국에서 '보수 꼴통의 이기주의'라고 비난이 쇄도했을 터이지만 부산에 대한 비판은 무뎠다.
부산의 외곬 버티기가 통하는 것은 시민들의 시의적절한 정치적 선택에 기인한다. 선거 때마다 절묘한 선택을 하기에 여야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역으로 판단하고 부산 공략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 새누리당의 텃밭인 듯하지만 결코 녹록하게 경작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야당 지역구 국회의원을 당선시키고, 각종 선거에서 당선은 못 시켜도 야당이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표를 나눠준다. 민심이 선거 때마다 달라지거나 달라질 조짐을 보이는데 여야가 어찌 관심을 기울이지 않겠는가.
4월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대구경북 공천 신청자들은 시간과 돈 뺏겨가며 서울 중앙당에 가서 면접을 봤지만 부산은 공천심사위원회가 그쪽으로 옮겨 가는 편의를 제공했다. 민주통합당도 한명숙 대표 체제가 출범하고 바로 부산으로 가서 첫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새누리당은 부산이 위험하다는 신호 때문이었고, 민주통합당은 부산에서 상당한 의석 확보 가능성을 확인해서이다.
이런 부산을 바라보는 대구경북민들의 마음에는 질시와 부러움이 교차한다. 새누리당의 최대 텃밭이지만 새누리당은 잡은 물고기로 취급하고 먹이를 줄 마음이 없다. 누구를 공천하더라도 당선되는데 굳이 지역 관리에 공을 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 어떤 인물을 내세워도 당선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는데 뭣 하러 환심을 사려 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선거에 관한 한 대구경북은 수구 보수 꼴통으로 인식돼 왔다. 2'28학생의거를 행한 민주화의 요람이었고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고 독립운동과 새마을운동을 견인해 낸 대구경북이 오욕을 뒤집어써 버렸다. 그러는 사이 대구는 제3의 도시에서 광역시 중 가장 낙후된 도시로 전락했다. 인구는 인천에 뒤진 지 오래이고 성장 가능성은 대전에도 못 미친다.
지역 발전을 견인해야 할 국회의원들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환심 사기에만 열중할 뿐 정책개발이나 예산 확보를 위한 노력은 거의 없다.
19대 총선에 나서려는 예비 후보들도 공약 개발보다는 박근혜 위원장과의 인연과 앞으로의 역할만 강조한다. 그래야 공천을 받는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래 가지고는 '대구경북은 역시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만약 대구경북에서 야당이 1석의 지역구라도 건진다면 대구경북을 바라보는 전국의 시선은 엄청 달라질 것이다. 대구에서 여야 정당의 최고위원회의가 열리고, 경주에서 국무회의가 열릴 수도 있다. 지역 발전이 담보되는 것은 물론이다.
새누리당은 뺏기지 않기 위해서, 야당은 이젠 된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에 너도나도 대구경북으로 달려올 것이다. 부산을 이기는 길이 여기에 있다.
최정암/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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