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3·1운동 길 투어 유감

입력 2012-03-06 11:10:46

뜻깊은 3'1절도 지났으니 좀 못마땅한 이야기를 해도 양해해 주시리라.

대구시 중구의 제일교회 옆에 '3'1운동 길'(제일교회-신명여고-독립운동 표지석)이 있다. 대구 도심 투어객들은 동산병원 의료선교박물관과 청라언덕을 둘러본 뒤에 3'1운동 계단을 걸어 내려온다. 손 스피커를 든 해설사는 이 길이 바로 뜻깊은 '대구의 3'1운동' 길이라고 설명하고, 투어객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100여 년 전 한일강제병탄으로 나라를 잃었을 때, 조정의 올곧은 중신들과 각향의 선비들은 대성통곡했다.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했다. 어떤 이는 매국노를 비판하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스스로 사하고, 분노를 터뜨림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했다.

알다시피 조선은 망하는 순간까지 '최후의 결전' 한 번 치르지 않았다. 싱겁게 망해버린 것이다. 그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고도로 세련된 일본의 전략, 너무나 큰 경제력과 군사력, 국민의 인식 차이, 불리한 국제 정세 등등. 그러나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조선의 패배 의식이다.

서로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것으로, 땅을 치며 통곡하는 것으로 죽은 나라를 살릴 수는 없다. 분기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곡기를 끊어 죽음으로 항거하거나, 골목을 뛰어다니며 만세를 부르는 것으로도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을 수는 없다. 나라가 망하거나 서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진실로 나라를 지키고 싶었다면 최후의 결전조차 벌이지 못할 지경으로 나라를 도탄에 이르게 하지 않았어야 했다. 이미 도탄에 빠진 나라라도 지키고 싶었다면 부둥켜안고 울부짖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 아니라 낫을 들고 적을 향해 달려들었어야 했다. 조선 사람이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일본인 한 사람씩을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고 덤볐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기울어진 나라를 지킬 것인가.

목숨 걸고 적을 향해 덤비지 못한 선대를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후대가 함부로 선대를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오늘 '3'1운동 길'을 걸으며, '이 길이 뜻깊은 3'1운동 길'임을 되새기는 동시에 '만세나 부른다고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는 역사적 교훈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3'1운동 길 투어'의 의미는 퇴색되고 만다.

조두진 문화부차장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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