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에서] ◆ 장재철 작 '이것과, 이것이 아닌 다른 모든 것'

입력 2012-02-28 08:09:32

캔버스를 표현수단으로 택한 작가의 엉뚱함

올록볼록, 요모조모, 알록달록. 각각 네 음절로 된 우리말이다. 예쁘다. 그렇지만 미술평론에서 비평 대상을 수식하는 부사어로 쓰기엔 그 낱말들은 조금 유치하다. 뭐, 어느 나라의 문법 체계에서나 대부분의 의태 부사는 그렇다. 서양화가 장재철의 작품엔 그렇게 유치한 단어가 따라붙어도 된다. 기왕이면 '썰렁'이라는 표현도 하나 덧붙여서.

딴 사람도 아니고, 윤규홍 본인이 서울에서 바쁘게 작업하고 있는 작가를 공들여 섭외하고 개인전까지 성사시켜 놓고서는 기껏 하는 말이 유치하다, 썰렁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가? 말하고 싶었다. 그게 모더니즘 회화의 전통에 서 있는 이 작가의 표면 형식을 설명하는 한 가지 길이니까.

서양화가 장재철은 캔버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림이 그려지는 밑판인 캔버스는 미술의 도구 중 하나다. 비슷한 구실을 하는 종이도 그렇고, 붓이라든지 물감 따위는 그것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물건이지, 작품 그 자체는 될 수 없다. 그런데 장재철 작가의 생각은 출발이 엉뚱했다. 서양회화의 역사에서 늘 도구에 불과했던 캔버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사각형의 하얗고 평평한 캔버스 모양을 요모조모 바꾸고, 색을 알록달록 바꾸어 우리 앞에 툭 던져 놓았다.

전시 제목 "이것과 이것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은 예술사회학과 법사회학에서 주로 쓰는 형식논리학 용어를 살짝 비튼 표현이다. 그래서 애당초 이 뜻을 금방 안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 아트센터 건물에서 같이 몸담고 있는, 전 매일신문 전경옥 편집부국장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조언했다. '다르게 구분되는 바로 이것'이다. 세상의 모든 평가에는 비교가 따른다. 예컨대 이 글 셋째 문단 "장재철은 캔버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도 "다른 화가들보다"라는 말이 생략된 평가다.

작가는 자기 작업을 다른 회화, 다른 미술, 다른 예술과 끝없이 구분하며 회화의 본질을 파들어 간다. 그래서 유치하고 썰렁하기 짝이 없는 작품들도 다시 보면 지적인 유희와 함축적인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캔버스 표면이 찢어질 것처럼 팽팽히 솟아오른 곡선은 장재철의 현대미술론에 서려 있는 긴장을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윤규홍, 갤러리 분도 아트 디렉터

▶~3월 17일 갤러리 분도 053)426-5615.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