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복막염 남편 돌보는 이석남 씨

입력 2012-02-22 09:46:32

"남편이 아픈것 보다 가난이 더 힘들어요"

"가난이 죄지, 아픈 사람이 무슨 죄가 있나요." 복막염 때문에 세 차례나 수술을 한 임기석(59) 씨가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그의 곁을 항상 지켜주는 것은 아내 이석남(58) 씨다.

21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보호자 휴게실에서 이석남(58'여) 씨가 늦은 아침상을 차렸다. 밥상은 소박했다. 양은 냄비에 담긴 김치찌개와 밥, 호박 나물이 전부였다. 이 씨는 동네 친구가 찌개를 들고 병원으로 찾아오지 않았다면 이날도 병원 냉장고에 남은 찬밥으로 대충 때웠을 것이다. 남편이 복막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지 벌써 두 달째, 이 씨의 앙상한 팔다리만큼 마음도 야위어 가고 있다.

◆가난이 준 병

남편 임기석(59) 씨는 예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30년 전 경북 포항의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뒤 장이 파열됐다. 치료를 받았지만 그 사고 이후 남편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몸 상태가 변했다.

"날이 화창할 땐 남편 몸이 괜찮았지만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리면 올챙이처럼 배가 빵빵해졌어요. 수시로 구토를 하고. 항상 속이 쓰리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그래도 남편은 성실했다. 이 씨는 남편을 '하루살이'라고 표현했다. 남편은 건강이 조금 회복될 때마다 건설 현장에서 일당을 받고 일했다. 벽돌이나 모래를 나르는 고된 일을 할 수 없으니 나무를 옮겨주고, 건축 자재에 박힌 못을 빼는 일로 돈을 벌었다.

지난해 12월 19일 밤, 남편이 배를 붙잡고 소리를 질렀고 119에 실려 곧장 병원으로 갔다. "저 사람은 아무리 몸이 아파도 꾹꾹 참아요. 돈이 없으니까. 그때도 꾹 참았다면 남편은 지금 내 옆에 없었을 거예요."

남편의 병명은 복막염. 창자가 꼬이고, 십이지장에 염증이 생겼지만 남편은 꾹꾹 참아왔다. 지난해 12월 병원에 도착해 곧장 수술을 하고 최근까지 두 차례 더 수술을 했다. 지금은 대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남편은 허리에 배변 주머니를 단 채 버티고 있다. 뱃속이 엉망이 됐는데도 여태 참아온 남편 때문에 이 씨는 두 번 눈물을 흘렸다.

◆'가난이 죄'

가난은 이 씨의 건강도 빼앗아 갔다. 이 씨는 젊은 시절 식당과 공장을 오가며 돈을 벌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고 설거지를 하기도 하고, 대구 성서산단에서 자동차 부품을 조립해 생활비를 벌기도 했다.

그러다가 15년 전 자궁에 종양이 생기는 바람에 이 씨도 수술대에 누웠다. 4년 전에는 허리 디스크 수술도 받았다. 나이가 들고 몸까지 병들자 일할 수 있는 곳도 줄어들었다.

"식당 같은 곳도 젊은 사람을 쓰려고 하지 나처럼 예순 살이 다 된 사람을 쓰려고 하겠어요. 일하고 싶어도 할 곳이 없어요." 지난해 여름 이 씨도 사고를 당했다.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보신탕 집에서 부엌일을 하다가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쇄골이 부서졌다. 오른팔이 아픈 이 씨는 물주전자도 제대로 들지 못한다.

이 씨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다. 장성한 자식이라도 있으면 의지하겠지만 부부에게는 서로가 유일한 가족이며 버팀목이다. 이 씨의 하루는 이제 남편에게 맞춰져 돌아간다. 병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남편 식사를 챙기고, 팔다리를 주무르고. 정작 자신을 위한 시간은 없다. 일주일에 한두 번, 남편이 잠든 저녁 시간을 이용해 병원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인 집에 들러 쌀밥과 김치를 봉지에 싸서 온다. "병원에서 밥 사먹으면 돈이 많이 드니까 밥을 잔뜩 챙겨와 냉장고에 넣어둬요."

이 씨는 그래도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다.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아픈 남편이 아니라 가난이라고 여긴다. 여태까지 부부 명의로 된 집 하나 없이 월세를 주고 이집 저집을 떠돌며 살았어도 남편을 미워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세 번째 수술을 권했을 때 이 씨는 남편 몰래 눈물을 흘렸다. 가입된 보험도 없고 매달 생계급여 50여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수백만원의 수술비는 감당할 수 없는 짐이었다. 수술에 필요한 재료와 약이 비급여라서 두 달간 발생한 수술비와 병원비가 700만원이 넘는다. 앞으로 배변 주머니를 몸속에 넣는 수술까지 하면 1천만원 가까이 수술비가 나온다. "가난이 죄고 병이 죄지 이 사람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이 씨는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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