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주막이었던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화원유원지내'춘원관'이 정부의 4대강사업과 달성군의 하천정비사업에 따라 헐리게 됐다.
춘원관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고령과 인접한 창녕, 의령, 합천 등 영남권의 보부상들이 오가는 길에 들를 정도로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주막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술집과 식당, 여관을 겸한 곳이었다.
춘원관에는 50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팽나무가 사라질 주막을 지켜보고 있다. 옛 사공들은 이 팽나무에 밧줄을 매 나룻배를 정박시켰다. 나룻배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보부상들이 들어오면 팽나무 아래에는 임시 장터가 섰고, 선주들은 좋은 날을 골라 만선과 무사고를 기원하는 풍어제도 올렸다고 한다.
춘원관이 일제강점기까지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앞에 위치한 '사문진 나루' 때문이었다. 부산포에서부터 물품을 실은 배가 낙동강을 따라 올라오면 7, 8일 만에 사문진 나루에 도착한다.
사문진 나루를 통해 들어온 물품 가운데 5분의 2는 대구시장에서 소비됐고 나머지는 충청, 강원, 호남 등 전국 각지로 수송될 만큼 춘원관은 물품 중개지였다.
1940년대 초 한 기록에 따르면 한해 동안 사문진 나루를 통해 반입된 물자는 쌀 20만 섬, 콩 10만 섬, 우피 40만 근, 소금 10만섬, 석유 3만5천 상자, 성냥 6천 상자, 옥양목 6만 단, 무명 10만 단에 달했다. 또한 상당량의 잡곡과 약재, 잡화, 견'면직류 등이 사문진을 통해 반출된 것으로 돼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이 춘원관을 인수해 영업을 하다 광복후인 1948년경 건물이 헐렸고 현재 건물은 1970년대에 일부 복원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낙동강에 현대식 교량인 사문진교가 놓이면서 사문진 나루는 흔적을 감췄다. 최근까지 매운탕집으로 명맥을 이어온 춘원관은 세월에 떼밀려 자취를 감추게 됐다.
달성'김성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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