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는 나의 삶" 전국체전 대표 경북대 권용정 교수

입력 2012-02-13 07:55:51

동계체전 7번 참가 작년부터는 최고령

권용정 교수가 지난해 2월 강원도 용평에서 열린 동계체전에서 경기 후 포즈를 취했다. 대구시스키협회 제공
권용정 교수가 지난해 2월 강원도 용평에서 열린 동계체전에서 경기 후 포즈를 취했다. 대구시스키협회 제공
권용정 교수가 지난달 10일 무주에서 열린 대구스키협회장배 스키대회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 대구시스키협회 제공
권용정 교수가 지난달 10일 무주에서 열린 대구스키협회장배 스키대회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 대구시스키협회 제공

경북대학교 응용생명과학부 권용정(59) 교수는 14일 개막하는 제93회 전국동계체전 준비를 위해 최근 주말이면 스키장이 있는 전북 무주에서 살다시피 했다. 나이만 보면 대회 임원이나 동계 종목과 관련된 협회 감투를 맡아 대회준비를 하러 가겠거니 여겨지겠지만, 진짜 이유는 동계체전 출전을 위해 훈련을 하러 가는 것이다.

권 교수는 스키 남자 일반부 대구 대표선수다. 이번 대회를 포함해 동계체전만 벌써 7번째 출전이다. 스키 회전과 대회전에만 참가하다 지난 대회 때부터는 슈퍼 대회전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젊고 어린 선수 일색의 스키 종목서 권 교수가 눈에 띄는 건 당연지사. 권 교수는 지난 대회 때부터 동계체전 최고령 참가자가 됐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지도와 훈련을 받은 젊은 선수들과의 경쟁이 다소 버겁지만 꾸준히 한 자릿수 등수를 기록할 만큼 스키 실력만은 인정받고 있다.

권 교수는 국내에서 일반인에게 스키가 잘 알려지지 않은 때부터 설원을 누볐다. 그 역사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대 1학년 때인 1972년, 대학 산악부 회원이었던 권 교수는 그해 겨울 설악산 겨울등반을 마친 후 홀로 진부령에 남아 스키를 배웠다.

당시엔 국내에 스키장이 없던 시절이었다. 권 교수는 진부령 눈밭에서 스키를 타는 대학생들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해 동네 이장 집에 민박을 하면서 스키와 인연을 맺었다.

"장비도 없고 타는 방법도 몰랐죠. 민박집에 함께 있던 친구들에게 장비를 빌려 호기심을 충족했죠."

눈앞에 펼쳐진 설경 속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수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자연과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 들이마시는 공기는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그렇게 시작한 스키는 마냥 좋기만 했다.

이듬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스키장비를 사고서는 겨울만 되면 강원도 일대 행정관청에 전화를 걸어 눈이 왔는지를 물었다.

"당시엔 스키장이 없어 주로 야산 언덕에서 스키를 타야 했는데, 무장공비 출연이 빈번해 겨울이면 군부대의 경계근무가 삼엄했습니다. 간첩으로 오해를 받으면 총을 맞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요."

권 교수는 그곳에서 당시 스키선수로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김진록 씨 가족을 만나 스키를 배우며 그들 가족과 깊은 인연도 맺게 됐다. "김 씨 가족 7남매는 모두 스키를 전문적으로 탔습니다. 방학 때면 3, 4주씩 그곳에 머물며 배추밭 위에서 스키를 함께 즐겼습니다. 당시 김 씨가 가지고 있던 외제스키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그때 대구에서 한 짐을 지고 강원도까지 가는 건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대구에서 영천으로 가 중앙선(기차)을 타고 영주에 도착해 다시 동해선으로 갈아 타 강릉에 내린 뒤엔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했다. 하루 한번뿐인 버스를 놓치면 명태를 가득 실은 트럭에 몸을 기대기도 했고, 간혹 군용트럭을 얻어 타기도 했다. 가는 데만 이틀이 걸렸다.

유학 시절에도 스키를 가까이 했다. 1985년 영국 웨일즈 카디프로 유학을 간 권 교수는 마침 인근에 언덕을 이용, 인공눈을 뿌려 만든 스키장이 있어 주말이면 그곳을 향했다.

4년 유학생활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왔을 땐 마침 무주에 스키장이 생겨 세 살배기 아들을 이끌고 스키 삼매경을 이어갔다.

"아들을 스키선수로 키우고 싶어 그때부터 시간만 나면 스키장에 갔죠. 함께 선수로 뛰다 아들은 지난해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스키를 그만뒀어요."

권 교수는 여름이면 곤충 채집 차 유럽에 가는데, 그때마다 알프스에 들러 스키를 즐겼다. 지역 시합에도 나갔는데, 그곳에서 80대 중반의 오스트리아인 한서 씨가 시합에 나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걸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다.

"노부부가 함께 스키 타는 모습이 어찌나 멋있게 보이던지, 나도 90세까지는 체력을 유지해 스키대회에 출전하기로 다짐했죠."

그곳에서 만난 비슷한 나이의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출신 연주자와는 흥미로운 경쟁도 펼쳤다. "뮌헨에서 교향악단 연주자로 있다는 그가 한번은 함께 출전한 대회에서 졌다고 억울해하더라고요. 겨울 스포츠 고장 출신의 자존심을 구겼다는 게 이유였죠."

딸의 유학길까지 인근에 스키장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게 할 만큼 스키에 중독돼 버린 권 교수는 그동안 크고 작은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키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부상 이야기를 들려 달라 했더니, 손목이며 어깨의 상처부터 보여준 권 교수는 15년 전 미끄러져 뒹굴면서 갈비뼈와 손목을 다쳐 한동안 고생을 했고, 무릎이며 손목 등 몸 군데군데 성한 곳이 없을 만큼 많은 부상을 당했다고 말했다.

6년 전, 근육을 기른다고 학교에서 인라인을 타다 낙엽에 미끄러져 어깨 쇄골을 크게 다쳐 핀을 삽입하고 볼트를 7개나 끼웠는데, 재작년 또다시 스키장에서 연습도중 갑자기 튀어나온 일반인을 피하다 같은 곳에 부상을 당해 볼트가 하나 더 늘었다는 권 교수는 이 때문에 공항 검색대서 매번 진땀을 뺀다.

손목이 부러져 어깨까지 깁스했을 땐 스키가 타고 싶어 의사 몰래 팔꿈치까지만 남겨놓고 깁스를 풀어헤친 적도 있다는 권 교수는 스키를 오랫동안 타려고 술 담배는 물론 음식까지 가려먹는다. 시속 60~90㎞에 이르는 속도를 버티려면 강한 체력 없이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에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갈 땐, 입만 대고, 기름진 음식을 삼가며 단백질 위주로 식단을 구성한다. 몸에 딱 달라붙는 스키복을 입었을 때 배가 나오면 보기 싫은 이유도 있지만, 이보다는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스키를 타고 싶기 때문이다.

"스키의 매력은 대자연 속에서 중력에 역행해 자유 낙하하는 짜릿함이라고나 할까요. 코끝을 에는 칼바람을 맞을 땐 세상 전부를 얻은 것만큼 희열을 느낍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출발선에서 응원이라도 하자'며 세계인의 축제에 뭐라도 이바지하겠다는 것을 단기목표로 삼은 권 교수는 알프스에서 만난 한서 씨보다는 좀 더 많은 스키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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