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맛있게 먹기] 시학(詩學'Poetica) (1)

입력 2012-02-09 14:01:06

'모든 예술은 모방에서 출발'…예술의 기본 이론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이라는 책은 연극을 전공한 이들이나 마니아들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책이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최초의 문학이론서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대의 비극에 관한 이론서이다. 물론 서사시 중심의 시에 관한 이론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연극 전공자들에게는 연극, 그중에서도 비극 이론서로 기억되고 있다. 이것은 시학의 저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기도 했다. 시학을 살펴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고 있던 최고의 문학 형식이 비극, 즉 연극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시학이 연극 이론서임을 분명하게 입증하는 셈이다.

또한 시학은 연극이나 문학 외에도 다양한 예술 분야의 기본적인 이론서로 손꼽히기도 한다. 시학에서는 문학이나 연극을 포함한 모든 예술이 모방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개념과 다양한 예술분야의 차이점 등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를 잘 쓰기 위해 시학을 본다면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시를 공부하기 위해 시학을 보는 이들이 있다. 이는 시학에 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종의 해프닝이다. 하지만 책을 보는 게 나쁠 일은 아니니 다행이라고 할 만하다. 오히려 시학을 통해 연극에 관한 관심과 예술의 기본 개념을 공부하는 좋은 계기가 되니 권장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시학에서는 모방의 개념에서부터 모방의 수단과 대상 방법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비극과 희극, 디티람보스와 서사시, 음악 등과 같은 예술의 차이를 분석하고 있다. 모방의 대상에 대한 구분을 살펴보면 비극은 사람들을 보통사람보다 더 잘나게 나타내고, 희극은 보통사람보다 못나게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모방의 방식을 제시한 장에서는 서사시와 서정시, 비극과 희극을 나누어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극적 모방의 개념을 말하고 있다. 시에서부터 연극을 설명하는 단계를 따라가다 보면 앞서 말한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가 연극을 여러 문학 형식 중에서 최고의 형식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극시의 기원과 발전과정 등을 설명하며 비극과 희극의 발전과정, 당대의 주요 극작가들이 이뤄낸 주요 성과들도 이야기하고 있다. 기원전의 일이니 당시의 공연 영상이 남아 있을 리가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에서 시학은 당시의 공연 상황을 추측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무엇보다도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설명하고 있는 것은 역시 비극이다. 그래서 비극과 서사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는데 현대에서도 이론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할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비극과 서사시의 공통점은 모방과 일상 언어의 운율에 도덕적으로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에 차이점으로는 서사시는 한 가지 운율만을 사용하며 서술체이지만 비극은 그렇지 않다는 점, 길이가 다르다는 점 등이다. 여기서 말하는 길이라는 의미는 몇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비극은 가능한 한 태양이 일회전하는 동안이나 이를 과히 초과하지 않는 시간 안에 결말을 지으려는 경향이 있는 데 반하여 서사시는 시간적으로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종의 원칙이 되어 기원전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연극에 적용이 되어왔다.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과 서사시가 구성요소에서 어떤 것은 공통되고, 어떤 것은 비극에만 고유하게 존재한다는 점에서 다르며 그런 점에서 비극이 더 우수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비극은 심각하고 완전하며 일정한 크기가 있는 하나의 행동의 모방이며, 여러 부분에 따라 여러 형식으로 아름답게 꾸민 언어로 되어 있으며, 이야기가 아닌 극적 연기의 방식을 취하는 것, 연민과 두려움을 일으켜서 그런 감정들의 카타르시스(katharsis), 즉 감정의 정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장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모방을 바탕으로 한 배우들의 행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각적 장면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며 서정적인 노래와 다양한 언어적 표현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플롯과 성격까지 거론하고 있으니 시학은 현대의 연극개념에서 생각해도 충분히 활용이 가능한 이론서가 분명하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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