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이 지나면서 명실상부한 임진년(壬辰年)의 기운이 온 누리를 지배하는 듯하다. 문제는 우리 역사에서 임진년은 미증유의 국난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 처절했던 해가 많았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였던 1232년에는 몽골군의 침입을 받아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는 난리를 겪었다. 최씨 무인정권을 비롯한 왕족과 귀족들이 강화에서 사치 생활을 누리는 동안 전국은 몽골군의 살육과 약탈로 초토화되었다. 그러나 강화 천도는 40년 대몽 항쟁을 위한 자주성의 발휘였으며, 그 와중에도 금속활자와 팔만대장경 그리고 상감청자를 빚어내는 민족적인 저력을 발휘한 측면도 없지 않다.
1592년은 조선 왕조가 임진왜란이라는 7년 전란에 휩싸인 첫해였다.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의 파죽지세에 20일 만에 도성이 함락되었으며, 선조 임금은 이미 피란길에 오른 처지였다. 이렇게 전 국토가 왜군에게 유린당하는 가운데도 해상에서는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학익진(鶴翼陣) 전술로 왜군을 크게 격파하는 한산도대첩을 이루어냈고, 육지에서도 곳곳에서 의병항쟁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6일간의 대접전 끝에 10배에 이르는 왜군의 공세를 물리친 진주성대첩의 개가를 올린 것도 이해 가을의 일이다.
1652년에는 북벌정책이 본격화되었다. 여진족(청나라)에 대한 굴복을 설욕하기 위한 야심 찬 전략이었으나 비현실적인 명분론과 효종의 갑작스런 승하로 좌절되고 말았다.
1952년은 6'25전쟁의 포화 속에 대흉년까지 겹친 불운의 해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임시정부 부산에서 정치 파동을 일으켜 독재의 발판을 굳혔으며, 판문점에서 휴전 협상이 진행되는 한편 백마고지에서는 처절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2012년 또한 국운의 성쇠를 가름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총선과 대선의 결과에 따라 그동안 기적같이 이룬 번영과 국위를 쇠락의 길로 몰고 가는 비운의 해가 될 수도 있다.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 속에 정작 우리 사회는 시대착오적인 좌우 논쟁에 빠져 있다. 현실을 도외시한 좌파적 이상주의의 득세와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우파적 탐욕주의가 자칫 나라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TV와 인터넷 그리고 SNS는 폭력과 선정(煽情)의 온상이 되었고, 사회 지도층에서조차 꼼수가 횡행하고 천박한 낭설이 죽 끓듯 한다. 임진년이 또 걱정이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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